사운드트랙 새 역사 쓴 '디스코 해방구'

2009. 7. 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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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82] 비지스의 <스테잉 얼라이브>(1977년)

표면적인 양상만으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가치를 오늘에 공감하기는 힘들다. 작금의 기준에 비추자면 한물간 음악과 촌스런 패션으로 가득한 이류 영화로 보일 뿐이다. 요컨대, <토요일 밤의 열기>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그 주제의 보편성이다. 인생의 희망과 현실의 좌절로 교직해낸, 현대 사회의 생존 문제에 직면한 '젊음의 초상'을 그린 내러티브가 시대를 초월하는 현재성을 담지하는 덕분이다. 여기서 디스코는 시대 상황의 배경막이자 당대 청춘의 소통구로 제시된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대중음악 비평가의 원고를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디스코의 의미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6월 7일치 <뉴욕 매거진>에 실린 비평가 닉 콘의 13쪽짜리 르포가 그 바탕이었다. '새로운 토요일 밤의 집단 제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이탈리아 이민 3세대 노동 계급 젊은이들을 매개 삼아 디스코가 상징하는 당대 대중문화의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콘은 디스코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밥 딜런이 누구인지조차 기억 못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도전의 여지가 거의 없는" 규격화된 인생을 사는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밤에 거대한 해방의 순간을 맞아 분출한다"고 덧붙였다. 1950년대의 로큰롤과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이 그랬던 것처럼, 청년 문화와 하위 문화의 집대성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주체들의 탈출구로서 디스코가 그때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 거물급 음반 제작자로 뮤지컬과 영화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하던 로버트 스틱우드가 기사의 내용에서 상업적 잠재 가치를 발견한 것은, 그러므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틱우드의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어 있던 비지스가 영화 음악에 참여한 것 또한 마찬가지 필연이었다.

비지스는 탈고도 되지 않은 시나리오 초안만 읽고 일주일 만에 다섯 곡을 만들었다. 뉴욕 거리를 걷는 주인공(존 트래볼타)의 이미지와 함께 영화 서두를 장식하는 노래 '스테잉 얼라이브'는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주인공의 경쾌한 발걸음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리듬과 "도시의 정글에서 살아남기"를 얘기하는 노랫말은 <토요일 밤의 열기>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침체 상태였던 비지스의 변신 의지와 생존 투쟁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테잉 얼라이브'의 엄청난 성공이 놀라움을 자아낸 이유도 거기 있었다. 주류 백인 밴드가 사그라지던 디스코 열풍에 마지막 절정을 선사함으로써 그 에너지를 완전연소시킨 의외성 때문이었다.

'스테잉 얼라이브'의 성공은 <토요일 밤의 열기>를 그해 최고 흥행작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수록 앨범을 사상 최대 판매량의 사운드트랙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것은 또한 음악 업계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정착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음악적 유행을 영화와 결합시키고 그 사운드트랙을 홍보 도구이자 수익의 원천으로 두루 활용하는 자본집약적 이윤극대화 전략이다. "상업적 성공의 새로운 표준"이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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