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서부' 현실과 마주서다

2009. 6.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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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79]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었다. 미식축구팀의 이름('포티나이너스')으로 여전히 자취를 남기고 있는 19세기 중반의 골드러시 이래,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였건 2차 대전 이후 '풍요의 시대'였건 관계없이, 꿈을 찾는 사람들로 날마다 팽창중이었다. 요인은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의 천혜 자연, 자원 조건이었다. 거기에 할리우드의 존재감 또한 한몫을 했다. 스튜디오들이 줄지어 들어서기 시작한 1910년대 이후 할리우드는 캘리포니아에 대한 '낭만적 서부'의 환상을 부추긴 상징적 이미지로 고정되었던 것이다. 낙관주의와 이상주의가 이곳의 문화적 토양으로 자리잡은 배경들이다.

대중음악사에 기록된 캘리포니아의 흔적이 말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독자적인 서부 스타일이었던 서프 음악과 뉴욕 프로테스트의 유토피아적 대응 함수였던 사이키델릭 록은 온전히 '캘리포니아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의 70년대'에 들어 로스앤젤레스가 처음 뉴욕을 제치고 한시나마 음악 시장의 판세를 주도했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야흐로 이상이 이성을 누른 시대였고, 캘리포니아는 시대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당대 최고 인기 밴드로서 이글스는 '서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이글스의 오리지널 라인업에 캘리포니아 출신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쾌락주의를 차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로 삼은 태도 또한 이글스가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구현이었다는 점을 명백히해준다. 그러므로 미국 건국 200주년에 발표한 '호텔 캘리포니아'를 통해 이글스가 성공 신화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얼핏 아메리칸드림의 '시적 정의'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뒷날, 레이건의 공화당이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 인 더 유에스에이'를 미국 찬가로 오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호텔 캘리포니아' 발표 전만 해도 이글스에 대한 평단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대표적으로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는 그들이 "오직 교외 지역의 부유한 중상류층에 의해서만 실현되어 왔던 충족의 판타지"를 선전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그러한 비판적 견해에 대한 자기성찰의 결과였다. 이 노래에서 캘리포니아는 더는 달콤한 약속의 땅이 아니다. 보컬을 담당한 돈 헨리는 이 노래가 "순수의 상실과 영광의 퇴색에 관한 것"이며 여기서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축약한 소우주"라고 밝힌 바 있다. 노랫말의 마지막 구절처럼, "원하면 언제든 나갈 수는 있지만 결코 떠날 수는 없는"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의 욕망과 신기루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태도"로 마주 선 것이다.

더불어 '호텔 캘리포니아'는 당대의 트렌드(포크 록과 컨트리 록)에 안주하던 이글스가 음악적 혁신을 이룬 지점이기도 하다. 저 유명한 기타 솔로 파트에서 드러나듯 이글스는 이 노래를 통해 하드 록의 요소들까지 포용해냄으로써, 이후 저니와 하트 등을 통해 정형화하는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의 원형을 제시했다. 이제 캘리포니아는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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