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리더십①] 9년 전과 달라진 부드러운 카리스마

최원창 2009. 6. 8.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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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 최원창] 허정무(54) 축구대표팀 감독은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특이한 '최초의 기록'에 도전한다.

선수·트레이너·코치에 이어 감독으로 월드컵에 네번째 도전장을 던지게 된 것이다. 각기 다른 자격으로 네 번이나 세계 최고의 무대에 나설 만큼 허 감독에게 월드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그는 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선수로 나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뽑아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트레이너로 참가한데 이어 94년 미국월드컵은 수석코치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마침내 한국 선수단의 선장 자격으로 또 하나의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감독으로 월드컵에 나서기까지 16년이 걸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지휘봉을 잡겠다는 꿈을 품고 1998년 10월 경선을 통해 지휘봉을 잡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 진출 실패와 아시안컵 졸전으로 꺾이고 말았다.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던 그는 2007년 12월 대표팀 감독을 제의했을 때 주위의 만류에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도박이라고 했지만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악바리 근성을 보였던 것이다. 그는 "지휘봉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넘겨줘야 했던 2000년의 한을 풀고 싶다"고 했다. 허정무 감독은 서정주님의 시 '국화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다시 섰다.

86월드컵대표팀 허정무선수가 일본과의 마지막대결에서 결승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①9년 전과 달라진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의 별명은 '진돗개'다. 전남 진도 태생이기도 했지만 한 번 물면 놓치않는다는 악착같은 승부욕을 빗댄 표현이다.

항상 배고팠던 촌놈 허정무는 153㎝의 작은 키로 축구를 해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2년을 꿇고 다시 중학교에 들어가 불과 세 달만에 주전을 따낸 악바리였다.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에서 뛸 당시 네덜란드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과 세 차례 맞대결에서 악착같이 막아낸 일화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를 거칠게 막아내 화제를 모았다. 그런 까닭에 허 감독은 강성 이미지다. 선수들에게도 호랑이로 악명을 떨쳤다. 8년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해 초 선수들은 한 숨 섞인 목소리로 "죽었다"를 복창했다. 하지만 그는 달라져 있었다.

'나를 따르라'던 장군형 리더십에서 '함께 가자'는 섬김의 리더십을 펼쳤다. 그를 겪어본 고참들은 "예전에는 선수들을 가둬두려고 하셨는데 이제는 선수들을 이해해 주신다"고 평했다. 첫 사제인연을 맺은 박주영, 염기훈 등은 "듣기로는 무서운 분으로 알았는데 실제는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반 진통도 있었다. 무승부가 이어지며 '허무 축구'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그의 리더십을 의구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과제와 당부, 격려를 담아 일일이 편지를 보내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10개 중 9개를 실수했어도 잘한 1개를 칭찬하는 격려는 선수들과 일체감을 이루는 가교였다.

최원창 기자 [gerrard11@joongang.co.kr]▷ [허정무 리더십②] 과감한 세대교체로 승부수 [허정무 리더십③] 부임 18개월간 쏟아진 기록들 한국, UAE에 2-0 승리..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대표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기까지 북한 본선진출, 키는 한국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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