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특별기획](56)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오도엽 | 시인 2009. 5. 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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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그날의 아침

이소선의 목소리로 1970년 그날을 들어보자.저녁때쯤 되었는 갑다. 교회를 갔는데, 목사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면서,"집사님, 이기지 못할 큰 시련이 오니까, 그 시련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하세요. 큰 시련이 오면 하나님의 힘으로 이겨 내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해서 닷새 동안 금식하면서, 강대상 밑에서 기도하세요."

목사가 그라는 거야. 그 말에 얼떨결에 아멘, 해버렸어. 아멘은 그렇게 하겠다는 거야. 내가 아멘 했으니까 닷새 동안 꼼짝없이 금식기도 했지.

삼일째 되는 날 늦게 태일이가 교회로 왔어.

1969년 대구 친구들과 남산에서(맨 왼쪽이 전태일)."엄마, 금식기도 하면 너무 힘들잖아. 몸도 약한데 삼일만 하고 그만두세요."

걱정 마라 괜찮다, 그라며 태일이 말 안 듣고 계속 금식기도를 했어. 닷새째인가, 새벽에 마룻바닥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었어. 그란데 커다란 보자기가, 이불 홑청처럼 네모 반듯한 크고 하얀 보자기가 딱 내 앞에 깔리더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얀 천이 내려오더란 말이지. 태일이가 걸어오지도 않고 내 곁에 있지도 않았는데, 공중에서 떨어졌는지 그 홑청 위에 있는 거야. 그라니까 흰 두루마기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보자기 네 귀퉁이를 딱 말아 쥐더니만 태일이를 데리고 위로 막 날아서 올라가 버려. 그게 금식기도 마치는 날이야. 꿈이었어. 깨어났는데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참 좋더라고. 태일이를 데리고 가는데 말이야. 강대상 밑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날이 밝으니까 막내딸이 찾으러 왔어.

"엄마, 오늘 금식기도 끝나는 날이라고 오빠가 엄마 데리러 가보랬어. 엄마 혼자 못 걸어온다고 모시고 오랬어. 오빠는 집에서 챙길 것이 많아서 그런다고 나보고 모시고 오래."

그라기에 "왜 내가 못 걸어가나. 데리러 오게." 그때는 젊었으니까. "나 혼자 걸어갈 수 있다." 그라고 둘이 왔어.

집에 와서 방문을 열어 보니까, 방이 달라졌어. 책은 책대로 지 옷은 지 옷대로 다 한 쪽에 옷걸이로 해서 걸어 놓고, 지 물건은 다 따로 놔뒀어. 지가 보던 책은 노끈으로 얼마나 여물게 묶었던지 몰라. 내가 애들보고 "누가 정리했나?" 물으니까, 순옥이가 "오빠가 밤새도록 했어. 지금도 하고 있어." 그라는 거야.

"태일아, 일하러 갈 건데 왜 밤새도록 잠 안 자고 정리를 다 했냐?""엄마가 무얼 찾기도 정신없고, 걸리치고 그라니까 정리해 놓으려고 그랬어." 그라는 거야.

"동생 보내서 왜 빨리 오라 했나?" 내가 물으니까 태일이가 그라는 거라."엄마가 닷새 동안 금식했으니까 얼마나 기운 없겠나. 내가 할 말도 있고 그래서 순덕이 보냈어."

태일이를 보니까 머리도 이쁘게 깎았고, 신발도 작은아버지가 사준 구두를 꺼내 닦아서 신고, 바지도 다려서 탁 입고, 바바리도 입고 좋게 꾸몄더라구.

내가 이제 부엌으로 가서 납작보리쌀하고 쌀하고 넣고 밥을 했어. 밥을 해갖고 생전 잘 사먹지 않던 김하고 차려서……, 뭐 그런대로 반찬 해놓고 밥상을 방에 넣어 주었지.

"엄마, 진지 잡수러 들어오세요." 태일이가 부엌에 있는 나를 부르는 거야."그래, 너거 먼저 앞에 먹어라." 내가 부엌에서 대답했지."아니, 엄마랑 같이 먹어야 돼요."그라면서 동생들보고 엄마 들어오기 전에 먹지 말라고 그래. 내가 방에 들어가니까 태일이 지가 기도하더라고. 평소에는 내가 했는데 말이야.

"우리 온 식구들 건강하게 해주시고, 정말 하나님이 보살피지 않으면 우리 엄마를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그라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식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랬어. 자기를 위해서는 뭐라 하냐 하면, 당당하고 용기 있게 남자다운 생각을 변하지 않고 가지게 해달라, 그라며 기도하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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