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진' 당신을 기억합니다

2009. 5. 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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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75] 엘튼 존의 <캔들 인 더 윈드>(1973년)

마릴린 먼로와 다이애나 스펜서.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과 영국의 왕세자비.

서로 다른 시공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다 간 두 사람은 그러나, 공히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운명의 우연한 일치 외에도, 여러모로 닮은꼴이었다. 그들은 불안정한 성장기를 거쳐 화려함의 절정에 오른 현대의 신데렐라들이었고, 만인의 선망을 한 몸에 받은 시대의 아이콘들이었다. 동시에 권력 최상부의 남자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당사자들이었으며, 의문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극의 희생자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대중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추모곡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로 서로에게 결속되었다. 엘튼 존의 '캔들 인 더 윈드'를 통해서다.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두 사람의 인생이 결코 꺼지지 않을 불꽃으로 승화한 접지점이다. "당신의 촛불은 오래전에 소진되었지만 / 당신의 신화는 영원히 타오를 겁니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먼로에게 헌정된 '캔들 인 더 윈드'와 다이애나비에게 바쳐진 '캔들 인 더 윈드'를 똑같은 노래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 자체로 추도사이기도 한, 노랫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먼로 사후 11년이자 다이애나가 12살이던 1973년 발표된 오리지널 버전에 대하여, 그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후자에는 '캔들 인 더 윈드 1997'이라는 명시적 제목이 붙었다.

'캔들 인 더 윈드'의 두 가지 버전은 각기 다른 의미로 대중음악사에 자취를 남겼다. 오리지널 버전이 대중문화와 문화자본의 신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자성적 독백이라면, 1997년 버전은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새로운 신화를 구축한 현상적 반향이었다. 그러므로 두 버전의 가치를 동일한 기준으로 저울질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만, 행간에 담긴 신랄한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오리지널 버전이 오늘날에도 가슴을 짓누르는 여운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엘튼 존의 작사 파트너인 버니 토핀은 오리지널 버전의 노랫말을 통해 연예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다룬 부분은 끔찍할 정도다. "심지어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 언론은 당신 뒤를 캐고 다녔지요 / 모든 매체가 떠들어 댔습니다 / 마릴린은 벌거벗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고."

스타의 삶에 기생하며 이윤을 착취하는 자본의 탐욕이 그 죽음마저 사고파는 행태를 개탄한 것이다.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애나비의 죽음은 저 섬뜩한 구절의 기시적 재연과 다름 아니다.

한 젊은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로 최근 한동안 국내 언론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권력은 죽음조차 거래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재확인시켰을 뿐, 이제와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여배우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캔들 인 더 윈드'의 감동은 스타로서 마릴린 먼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노마 진'(먼로의 본명)을 기억하려 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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