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역사 담은 '매혹적 8분 30초'

2009. 4. 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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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1972년)

"난 그 서프 음악 나부랭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버디 홀리가 죽은 뒤론 로큰롤도 내리막이야."

조지 루커스 감독의 출세작 <아메리칸 그래피티>(1973)의 한 장면이다. 1962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루커스는 "순수성의 상실이라는 관점"으로 "한 시기의 종말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에게 '버디 홀리의 죽음'은 1950년대의 낭만에 종언을 고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또래의 베이비 붐 세대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루커스와는 한 살 차이로, 당시 열세 살이었던 소년 돈 매클린에게도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외상으로 남았다. 1959년 2월3일 버디 홀리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그날, 매클린은 음악도 함께 죽었다고 생각했다.

"2월(의 어느 날)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지 / 내가 배달한 신문들 때문이었어 / 문가에 가져다 놓은 나쁜 소식에 / 나는 한 걸음도 더 움직일 수 없었지 / 내가 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 미망인이 된 그의 신부에 관해 읽었을 때 / 하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졌지 / 음악이 죽은 날에"

돈 매클린은 1972년 발표한 노래 '아메리칸 파이'에서 13년 전의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버디 홀리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성장한 또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무려 8분 30초에 달하는 반상업적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를 정복하고 밀리언셀러 고지에 오르도록 만든 동력은 바로 그들,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베이비 붐 세대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음악이 죽은 날"이란 노랫말은 '버디 홀리가 세상을 떠난 날'을 가리키는 관용어로 미국 상식 사전에 등재되었다.

물론 '아메리칸 파이'는 단순히 버디 홀리의 죽음을 애도한 노래가 아니다. 버디 홀리의 죽음 이후 달라진 세상에 관한 노래다. 순수의 50년대를 보내고 질풍노도의 60년대를 거쳐온 세대의 만가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메리칸 파이'는 <아메리칸 그래피티>와 기본 정서를 공유한다. 후자가 격변의 60년대를 앞둔 '폭풍 전의 고요'에 관한 영화라면, 전자는 '폭풍 후의 잔해'에 속한 노래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아메리칸 파이'에서 매클린은 특히, 로큰롤 1세대가 퇴장한 이후의 음악적 부침을 통해 60년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다.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밥 딜런과 버즈,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연대와 '알타몬트 콘서트'의 비극을 암시하는 메타포들이 노랫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 데이비드 웰스는 이 노래가 "로큰롤의 역사를 담은 매혹적인 8분 30초"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아메리칸 파이'는 여전히 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다. 함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구절들에 대해 작가인 돈 매클린이 해제를 거부한 탓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둘러싼 이야기는 하나의 우화처럼 보인다. 인생을 바꾼 음악이 있고, 음악에 건 인생이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음악이 넘쳐나지만 정작 그것을 느끼고 감사하는 법은 망각해버린 시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무엇이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건지 모른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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