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역사상 가장 쉽고 유명한 '리프'

입력 2009. 4. 14. 19:20 수정 2009. 4. 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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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73]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 (1972년)

2008년 8월2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521명이 동시에 기타를 연주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에너지의 날' 기념행사의 일환이었던 이날 '대규모 기타 앙상블'은 포크 뮤지션 한대수를 중심으로 그의 히트곡 '행복의 나라로'를 함께 연주했다. 하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세계 기록 작성에는 실패했다. 이 전해 같은 날에 수립한 한국기록(903명)도 바뀌지 않았다. 기네스북을 보면, 현재까지 관련 최고 기록은 2007년 6월26일, 독일 에슬링겐에서 1802명이 동시에 연주한 사례가 등재되어 있다. 이는 그보다 불과 23일 앞서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1721명이 연주했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들 기록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같은 노래를 연주했다는 사실이다. 역대 3위에 해당하는 1994년 캐나다 밴쿠버의 1322명 기록에서도 연주 곡목은 동일했다.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였다.

그들이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스모크 온 더 워터'를 연주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우선, 이 노래는 레드 제플린의 '홀 랏 오브 러브', 블랙 새버스의 '패러노이드'와 함께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리프로 익숙하다. 그처럼 단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각인되는, 비평가 데이비드 코노의 말마따나 "범죄적이라고 할 정도로 단순하고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리프"는 실상 많지 않다. 거기에 더해 '스모크 온 더 워터'는 다른 유명한 곡들이 갖지 못한 미덕을 하나 더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연주하기 쉽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의 이구동성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음악지 <롤링 스톤>은 "초짜 기타리스트가 맨 처음 시도하는 리프"라고 했고, <모조>는 "모든 스쿨 밴드들의 교가"라고 했다. 또한 토비 크레스웰은 그것이 "30년 넘는 세월 동안, 검은 티셔츠를 걸친 수백만 십대 소년들의 가슴을 날려버린 코드 3개짜리 서사시"이자 "에어 기타(Air Guitar: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으로 연주 흉내를 내는 행위)의 고전"이라고 평했다. 2천명 가까운 사람이 동시에 연주를 하기에 이보다 훌륭한 텍스트는 없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스모크 온 더 워터'는 1971년 12월 스위스 몽트뢰에서 있었던 대형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곡이다. 딥 퍼플의 보컬리스트 이언 길런은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저 유명한 리프에다 사고 당시 상황을 묘사한 가사를 얹었다. 사건 기록을 방불케 할 만큼 생생한 노랫말이었다. 마침 그때 딥 퍼플은 "모바일 스튜디오 설비로 레코드를 제작하기 위해 / 제네바 호숫가의 몽트뢰에 있었"던 것이다. 사건 당일 밤 그곳에서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프랭크 자파 앤 더 머더스가 / 가장 좋은 장소에서 공연하고 있었"는데, "어떤 멍청한 녀석이 조명탄을 쏘는 바람에 / 공연장이 불타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기가 수면에 차고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 현장에서 로큰롤의 걸작은 탄생했다.

짐작하건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 기타 앙상블'의 기네스 기록이 새로 쓰인다면 그때도 연주곡명은 '스모크 온 더 워터'일 게 분명하다. 고전이라고 반드시 난해한 것만은 아니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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