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미국 대표기업' 월마트 노동자들은 저소득층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LA | 이찬행 통신원·뉴욕 | 진숙경 통신원 2009. 4. 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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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미국모델, 그 파국적 종말 (2)노동 유연화 - 미국덜 받고, 쉽게 잘리는 '나쁜 일자리' 악순환

월 600달러로 살아가는 올슨

미국 캘리포니아주 휘티어에 사는 스캇 올슨(43)은 한 달에 600달러를 번다. 이탈리아 식당 주방에서 하루 4~5시간 동안 청소와 설거지를 한 대가이다. 이 식당일은 지난해 말 어렵게 구한 것이다. 그는 "지난 2월엔 밸런타인데이가 있어서 오래 일할 수 있었고, 그 덕에 800달러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슨은 가난과 극도의 스트레스로 얼룩진 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미장이 기술을 가진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제가 클수록 돈 문제가 심각해졌죠. 일감이 계속 떨어졌으니까요. 저희 집만 특별한 게 아니었어요. 저희 동네는 슬럼가가 아니었는데도 다들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올슨의 청년 시절인 1980년대 캘리포니아주 LA는 탈산업화의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40~50년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고 이때 흑인과 저소득층 노동자가 대거 모여들었다. 그러나 80년대 세계화의 바람이 몰아쳤고, 공장들은 인건비가 싼 제3세계로 옮겨가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기댈 곳 없이 시장에 내던져졌다.

올슨은 20대 중반에 잠시 항공운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에 다녔지만 하루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질려 그만뒀다. 그는 술과 마약에 더 빠져들었다. 약 20년간의 길고긴 노숙생활. 지금 노숙생활은 청산했지만 집이 없어 휘티어 노숙자를 거처로 삼고 있다.

"그래도 지난해에 이 보호소로 온 건 큰 행운이에요. 지금은 대기자 명단만 세 페이지라고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말부터 약 반 년 가까이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나 독립할 형편까지는 안된다.

"가장 허름한 아파트라 해도 한 달 임차료가 족히 800달러는 돼요. 560달러짜리도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부엌과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죠. 무척 더럽고요." 그는 앞으로 3년은 보호소에 머물며 돈을 모을 생각이다. 가장 큰 걱정은 건강이다. 탈장과 간염을 방치한 지 오래됐다. 지금의 수입으로 의료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만약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저나 제 아버지처럼 저임금 노동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그렇지만 미국에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가난한 사람으로 크는 것 같습니다."

미국 저임금 노동자 비율 세계 2위

국민 총소득 세계 1위 미국,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통계는 스캇 올슨이 겪은 비극이 올슨의 문제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미 전체 노동자를 임금 순으로 한 줄로 세운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한가운데 있는 노동자의 임금을 중위임금이라고 부른다.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버는 노동자를 OECD는 저소득 노동자로 분류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에 적절하지 않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는 이 같은 저임금 노동자가 네 명 중 한 명꼴(24.2%)이다.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1위는 한국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나쁜 일자리'가 많다는 뜻이다. 미 노동시장의 덕목으로 꼽히는 '낮은 실업률'은 이런 '나쁜 일자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저임금이라도 벌지 않으면 안되는 계층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이 본래 나쁜 일자리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73년으로 시계를 돌려, 다시 임금 순으로 노동자를 줄 세운다고 치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끝에서부터 10%는 2003년보다 매 시간 0.39달러를, 20%는 0.71달러를 더 받았다. 최하위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는 노동자 전반의 추락과 맞물려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말한다.

"(1950년 즈음의) 노사관계와 현재의 노사관계가 얼마나 다른지 알아보려면, 대표적인 두 기업을 비교하면 된다. 과거와 현재의 기업 말이다."

크루그먼이 말하는 과거 대표기업은 GM, 현재의 대표기업은 월마트다. 50년 전엔 GM이, 지금은 월마트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에 따르면 물가상승을 고려할 때, 월마트 노동자는 35년 전 GM 노동자가 받은 연봉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즉, 40년쯤 전엔 '미 대표기업 노동자'는 곧 중산층이었지만, 지금의 '미 대표기업 노동자'는 저소득층인 것이다. 30~40년 사이, 미 노동시장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노조의 약화, 고도의 노동 유연화. 여기에 비밀이 있다.

일시 해고에서 영구적 해고로

"미국 기업은 위기가 닥치면 바로 해고하지만 노동자들의 저항은 없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다시 써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노사관계는 대단히 경직되어 있는데 이번 위기를 유연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2월13일 '최고경영자 연찬회 특강'에서 한 말이다. 노동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선 노동자가 해고돼도 곧 복직할 수 있으므로 유연화에 순순히 따르고 있으니 우리도 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불황일 때 노동자를 잘랐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부르는 '일시 해고'가 미국에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도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로 짐을 쌌다. 그러나 이는 주로 80년대 전반의 일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피터 카펠리 교수는 "80년대 후반~90년대부터는 (일시 해고가 아닌) 인원 감축(다운사이징), 비정규직 활용 등 기업의 경영전략으로 인한 실직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다시 고용하지 않는' 해고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 같은 변화는 '노조 약화현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법은 인종, 성, 노조가입 등을 이유로 한 차별적인 해고만 아니라면 해고가 자유롭다.

사실상 해고규제가 없는 선진국은 미국이 유일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조와 기업 간 단체협약을 통해 해고남용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했다. 일시해고 관행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자들이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올 권리'를 단체협약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노조세력이 약해지다 보니, 노동자들의 안전판은 사라졌고, 결국 기업의 해고 칼날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금융부문의 팽창도 인원감축을 유행으로 만들었다. 기업들은 투자자(주주)를 모으기 위해 단기수익을 올리는 데 몰두했다. 이때 주로 활용된 것이 바로 인원감축이었다. 이러한 '신경영기법'으로 이름을 날린 이가 바로 GE의 CEO 잭 웰치다. 만약 인원감축으로 회사를 떠난다 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다면 큰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일자리 구하는 경우는 학력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99~2001년 미국 실직자 중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의 경우 70% 이상 재취업하는 반면, 고졸 미만은 재취업률이 50%에 불과했다. 재취업의 양극화 현상이다.

사실 인원감축의 유행이 불기 전에도, 노동자들 모두가 '일시 해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저학력 육체노동자들은 유연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다. 아시아 등으로부터 섬유·전자제품 수입이 늘자 미 기업들 상당수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공장들을 제3세계로 옮긴 것이다. 이때 실직한 저학력 육체노동자들 상당수가 '괜찮은 일자리'를 다시 구하지 못했지만 정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조 세력이 약한 서비스업종이었다.

월 900달러로 살아가는 살라자

멕시코에 살던 클레오틸데 살라자(29)는 2004년 8월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불법체류자였다. 미국에서 그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뉴저지의 큰 슈퍼마켓. 그는 시간당 임금 4~5달러를 받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식사시간은 단 15분. 그녀는 "고된 노동에 지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후 살라자는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책 제본공장에 들어가 2년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잘렸다. 지금은 파견업체에서 소개해준 의료장비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한 달 수입은 900달러. 일단 500달러는 집세와 관리비로 나간다. 그의 방 3개짜리 아파트에는 세 식구 9명이 살고 있다.

"한 달 식비는 200달러, 교통비는 160달러 정도 돼요. 7개월 된 딸아이가 있기 때문에, 옆방 시누이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대가로 한 달에 240달러씩 주고 있어요. 아무리 아껴도 이렇게 한 달에 1000달러는 써요." 매달 적자였다. 그는 "아프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며 "죽어야 할 상황이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막스밀리아노도 멕시코에서 온 불법이민자다. 그는 파견업체를 통해 제조업체의 창고에서 일하다 팔이 부러지고 눈이 찢어졌다. 그때 사측은 응급차를 불러주지 않았다. '당신은 파견업체 소속이니 파견업체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파견업체는 '2시간30분 뒤에 일이 끝나니 그때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결국 2시간이 지나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비가 문제다. 제조업체와 파견업체 모두 자기가 부담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시급 7.44달러 받는 스미스

워싱턴주 마운트 버논에 사는 조시 스미스는 얼마 전까지 월마트에서 시간당 임금 7.44달러를 받고 일했다. 그는 정규직을 원했다. 그러나 그의 일자리는 1주일에 33시간씩만 일하는 파트타임이었다. 그는 "그 돈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네소타주 프리들리에 사는 다나 라자이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는 월마트 창고에서 5년간 고된 노동을 해왔다. 덕분에 다른 노동자들보다 좀더 많은 시급 11.29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편으로는 월마트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월마트는 미취학 아동이 의무적으로 맞아야 하는 몇 가지 백신주사도 적용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미네소타주에서 제공하는 빈곤층 대상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는 월마트 일을 쉬는 주말에는 주유소에서 일을 한다. 월마트의 노동착취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정신차려 월마트'에 월마트 노동자들이 직접 올린 이야기다.

저임, 저숙련, 해고를 낳는 노동 유연화

유통업체, 청소·경비업 외주업체 등 서비스업종은 노조세력이 약하고 유연화는 강화되던 시기에 값싼 일자리를 양산했다. 그 때문에 유연성의 수준 역시 가장 높은 업종이라는 금메달을 땄다. '자르기 쉬운' 파트타임 노동자, 파견 노동자 고용률은 최고 수준인 반면 임금과 복지혜택(임금 유연성)은 최저수준이다. 노동조합 설립이 가장 어려운 업종이기도 하다. 기업체 서비스 노동자의 상황은 지역 서비스 노동자(소매점, 식당, 병원 등)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 교수는 "제조업 쇠퇴 이후 부상한 서비스업은 고소득 전문직의 서비스업과 저소득층들의 하위 서비스업으로 양극화됐다"며 "하위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보호망이 없어 이들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노동 유연화는 제조업 노동자들의 상황도 악화시켰다. 미국의 생산직 노동자는 독일이나 일본보다 숙련도(기술수준)가 낮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카펠리 교수는 '단기적 고용관계'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에 장기적 고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그 노동자가 기업에 장기간 머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그 때문에 기업이 노동자 훈련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런 저숙련 노동자의 가격을 높게 쳐줄 리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고, 이들의 저숙련 때문에 기업은 이들을 부담 없이 해고할 수 있게 되며, 그 자리는 다시 자르기 쉬운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로 채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LA | 이찬행 통신원·뉴욕 | 진숙경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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