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자살'로 죽지 않는 신화 만들다

2009. 4. 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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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72]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 (1971년)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웅은 일상의 세계로부터 초자연적 경이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거기서 막강한 세력과 마주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웅은 동료 인간들에게 혜택을 수여하는 힘을 얻어 이 신비로운 모험에서 돌아온다." 서사 구조의 분석 틀로서 이른바 '영웅의 여정'이라 일컬어지는 원형 신화의 골격을 제시한 것이다. 그와 같은 신화적 전형은 작품의 내력에서뿐만 아니라 작가의 이력에서도 나타나곤 하는데, 대중 음악의 역사에서 그런 영웅적 풍모에 가장 근접한 존재는 레드 제플린이었다고 할 것이다.

경력의 시종부터가 그렇다. 출발부터 '슈퍼 그룹'으로 환영받았던 레드 제플린은 드러머 존 본햄의 급사 이후 미련 없이 해산을 결정해버렸다. 출신 성분과 극적 종말, 모두 신화적이다. 경력을 통틀어, 고난은 있었을지언정,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신화화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마케팅 이론의 정반대로 움직이는 신비주의 전략으로 거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네 번째 앨범은 레드 제플린 신화의 정점이었고, '스테어웨이 투 헤븐'은 그 네 번째 앨범의 정수였다고 할 것이다.

레드 제플린의 네 번째 앨범에는 공식적인 타이틀조차 없다. 앨범의 제목은 물론이고 밴드의 이름과 멤버의 사진도 싣지 않은 채 발표한 탓이다. 게다가 멤버들의 이름은 네 개의 심벌로만 표기했다. 그래서 앨범은 '언타이틀드', '포 심벌스', '네 번째' 따위의 이름으로 제각각 통용되었다. 소속사 어틀랜틱 레코드의 간부는 그것을 "상업적 자살" 행위라고 우려했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즉각적인 히트곡으로 떠오른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싱글로 발매하지 않은 결정도 그렇다. 따놓은 당상과도 같은 성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한 일은 일반의 상식과 거리가 먼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레드 제플린의 신화를 더욱 신화적으로 연출해낸 배경이 되었다.

대중음악사상 레드 제플린의 네 번째 앨범보다 많은 판매량을 올린 작품은 오직 둘 - 이글스의 <데어 그레이티스트 히츠>(1976)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1982)뿐이라는 사실이 입증하는 바가 그렇다. '스테어웨이 투 헤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991년 미국의 남성잡지 <에스콰이어>는 이 노래의 방송 분량을 시간으로 합산하면 44년에 이른다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연주 시간 8분의 노래가 300만번 가까이 방송되었다는 얘기다. 이제와 '스테어웨이 투 헤븐'을 다시 소개하는 일이 쓸모없는 동어 반복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완성된 순간 이미 걸작의 반열에 오른 듯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그런 작품들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함께한다. 그래서 그 창조의 비밀을 캐려는 비평가들과 학자들의 시도는 거의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걸작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라는 수사는 그런 경우를 위해 마련해둔 변명거리임에 틀림없다. '스테어웨이 투 헤븐'은 그렇게 신화로 탄생한 노래다. 들어보면 알게 된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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