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독립성' 깨는 세력에 음악적 선전포고

2009. 3. 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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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7] 길 스콧-헤론의 <더 레볼루션 윌 낫 비 텔리바이즈드> (1971년)

시사평론가 닐 포스트먼은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다룬 양대 걸작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와 조지 오웰의 <1984>(1949)가 상반된 방향에서 핵심에 접근한다고 했다. "오웰은 두려움이 우리를 파괴할 것을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욕망이 우리를 파괴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두 작가가 형상화시킨 미래 국가의 모습은 본질적인 면에서 서로 동류다. 감시와 처벌의 강화를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1984>의 경찰 국가 '오세아니아'와 쾌락과 향유의 촉진을 통해 여론을 마비시키는 <멋진 신세계>의 소비 제국 '월드 스테이트'는, 개성과 다양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언론과 여론이 제 몫을 못하는 사회에 인간다운 삶이란 없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디어 파수꾼으로서 시민의 역할을 촉구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길 스콧-헤론의 <더 레볼루션 윌 낫 비 텔리바이즈드>는, 20세기 중반 이후 줄곧 가장 강력한 미디어로 군림하고 있는, 텔레비전 매체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정서적으로 물화한 티브이 방송을 거침없이 풍자하고 냉소한다. 여기서 텔레비전은, 마치 <1984>의 통제 도구인 '텔레스크린'과 <멋진 신세계>의 소비 상품인 '소마'(인위적으로 행복감을 주입하는 약물)를 결합시켜 놓은 듯한, '왜곡된 인식의 마취제'로 간주된다. 백인 남성 중심의 차별적 시각으로 현실도피적 물신주의를 부추기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더 레볼루션…>의 문제의식은 당대 미국의 시대성을 반영한 결과였다. 동서냉전이 고착화하던 정치적 환경과 30년 호황 끝에 위기로 빠져들던 경제적 여건 속에서 티브이 방송이 선무 도구로 전락한 상황을 지적한 것이었다. 텔레비전 미디어 자체를 문제 삼았다기보다는, 그것을 조종하는 정략적 권력을 성토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시대적 명분으로 포장한 이른바 '대의적 가치'를 내세워 인종과 빈곤층 문제 따위는 외면해버린 텔레비전을 통해서 혁명이 중계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길 스콧-헤론은 이 노래를 통해 대중음악사에도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시와 음악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랩 형식을 전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힙합 형성 과정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미국 상황을 닮은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것의 음악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일마저 껄끄럽게 만든다. 그 노랫말과 메시지에 더욱 절실하게 끌리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선전 방송, 부시의 걸프전 여론 조작, 독재 군부의 '땡전뉴스'처럼, 정권과 자본의 하수인이 된 방송은 '무심한 괴물'이나 다름없다. <더 레볼루션…>은 말한다. 삽을 든 '빅 브라더'와 '사상경찰'이 '1984'년쯤에나 가능했던 방법으로 그들만의 '멋진 신세계'를 건설한다며 텔레비전을 볼모 삼으려는 지금,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시민적 의무와 다르지 않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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