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흑인 정체성 '펑크'를 쏘아올리다

2009. 2. 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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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6] 제임스 브라운의 <겟 업 (아이 필 라이크 비잉 어) 섹스 머신>(1970년)

당연한 말이지만, 1960년대 미국 사회의 격변은 흑인들에게 더욱 현저한 영향을 미쳤다. 흑백 분리 차별법의 폐지와 투표권 획득 같은 제도 개혁의 성과는 무엇보다, 흑인들 스스로가 문화적 뿌리에 대한 자긍심과 인종적 특질에 대한 자부심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변화상은 전방위에 걸쳐 있었다. '블랙 파워 무브먼트'와 같은 극단적 양상도 나타났다. 그러나 오랜 세월 억압과 차별에 길들여진 흑인 사회를 변화시킨 가장 강력한 동력은 대중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임스 브라운이 있었다. 그는 솔 음악을 당대 정치·경제·문화적 인식의 집약체로 격상시킨 혁명가였다.

제임스 브라운은, 차트 분석 전문가인 조엘 휘트번에 따르면, 60년대와 70년대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흑인 뮤지션이다. 주목할 것은 성공의 크기만이 아니다. 성공의 방식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브라운은 스스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낸 뮤지션이었다. 펑크, 디스코, 힙합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남긴 혁신적 스타일의 창조자였던 것이다. 또한 브라운은 직접 자신의 레코드 회사를 운영한 사업가였다. 백인 소유의 어틀랜틱 레코드나 흑인 소유임에도 백인 관객을 겨냥했던 모타운 레이블과 같은 동시대 경쟁자들과 달리, 그는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당당히 내세웠다. '세이 잇 라우드? 아임 블랙 앤 아임 프라우드'(1968)는 브라운이기에 발표할 수 있었던 노래다.

비평가 데이브 마시는 브라운이 "아마도 열 번째로 뛰어난 보컬리스트쯤이었고 어쩌면 열두 번째로 훌륭한 작곡가 정도였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솔 음악의 황제였다"고 평했다. 단순히 뮤지션의 자질이나 재능만으로 가장 위대한 솔 뮤지션의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보편적 흑인들이 성취하고자 시도했던 지위 향상의 움직임을 흑인 사회 내부에서 구체화시킨 영웅이었다"고 한 비평가 리처드 리패니의 진술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무료 콘서트를 개최함으로써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피살 사건으로 비등한 폭동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던 일에서도 드러나듯, 제임스 브라운은 뮤지션을 넘어 흑인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겟 업 (아이 필 라이크 비잉 어) 섹스 머신>은 제임스 브라운의 당당한 흑인 정체성이 음악적 표현의 신기원을 통해 분출한 기념비적 노래다. 여기서 브라운은 리듬의 형식과 구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임으로써 흑인 음악의 아프리카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냈다. 비평가 로버트 파머의 말마따나 "모든 악기와 보컬 파트를 드럼처럼 연주"함으로써 전례가 없는 폴리 리듬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통해 솔 음악의 한 지류이자 본격적인 장르로서의 펑크의 태동을 알렸다. 그것은 리듬 앤 블루스에서 디스코와 힙합으로 이어지는 흑인 음악 발전사의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섹스 머신'이라는 도발적인 제목도 그렇다. 여기서 '섹스'는 성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의미로 파악해야 옳다. 생명체로서 느끼는 활력이야말로 당시 흑인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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