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목소리 해방시킨 '70년대 정신'

입력 2009. 2. 10. 20:31 수정 2009. 2. 1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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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4] 캐롤 킹의 <유브 갓 어 프렌드>(1971년)

1960년대의 포크 뮤지션들과 1970년대의 싱어-송라이터들 사이의 차이에 관하여 비평가 길리언 가는 "포크 예술가들이 기성 장르의 내부에서 역사적 전통에 몰두했던 반면,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은 극도로 개인적인 관점으로부터 나타났다"고 구분했다.

음악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창조적 열매는 서로 다른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1년의 간격을 두고 발표된 두 개의 걸작에 대한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의 비교 평가 또한 유사한 관점을 띠고 있었다. 그는 진정성과 현실성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캐롤 킹의 <태피스트리>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1970)보다 설득력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던 것이다. '70년대성'의 탄생이었다.

<태피스트리>는 모든 면에서 당대의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대중적 성공의 규모부터가 그랬다. 15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지키며 여성 뮤지션의 작품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다이아몬드 레코드'(천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고, 신인상을 제외한 모든 주요 부문을 휩쓸며 네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석권했다. <태피스트리>는 캐롤 킹을 싣고 날아오른 '마법의 양탄자'였다.

음악사적인 의미는 더욱 크다. 싱어-송라이터의 예술적 성취라는 측면에서 <태피스트리>는 70년대 전반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범이다. 좀 더 주목할 점은 캐롤 킹이 그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로버트 크리스트고는 이 앨범이 "무엇보다도 캐롤 킹이 여성으로서 개별적 인격을 확립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썼다. 킹의 피아노 연주와 목소리에 담긴 맨 얼굴의 아름다움이 대중음악의 남성적 기준에 대한 요구를 "아마도 영원히, 파괴해버렸다"는 것이다. 비평가 존 랜도가 "완벽한 음악"이라고 평했던 '유브 갓 어 프렌드'는 <태피스트리>의 그런 미덕을 완벽하게 집약해낸 노래다.

'유브 갓 어 프렌드'는 결여됨으로써 충만하다는 아이러니를 입증해낸 작품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하고 심지어 본인조차도 인정하듯 캐롤 킹은 결코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못 된다. 음상은 위태롭고 음역은 협소하다. 그러나 킹은 친우이자 동료 뮤지션인 제임스 테일러의 조언을 따라, 자신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오히려 상처받기 쉬운 여성성과 마음으로 호소하는 진정성의 마술적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솔로 데뷔작 <라이터>(1970)가 제목에서부터 스스로를 작곡가의 틀에 옭아매고 있었던 것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면모다. 수많은 히트곡을 합작했던 작사가 남편 제리 고핀과의 결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계기로 삼아 노랫말을 썼다는 사실도 그렇다. 그래서 존 랜도는 "가사와 선율이 과거보다 훨씬 굳건하게 결합했다"고 평했던 것이다. '유브 갓 어 프렌드'는 최고의 작곡가로 60년대를 지나온 킹이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로 70년대를 맞이한 전환점이었다.

상업적 성공이 음악적 성취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 상업적 성공 때문에 음악적 성취가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 노래가 그 사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예외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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