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발견한 음악, 주류 진입하다

2009. 2. 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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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3 사이먼 앤 가펑클의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1970년)

'뉴 저널리즘'의 선구자격인 작가 톰 울프는 미국의 70년대를 "미 디케이드(개인의 시대)"라고 칭했다.

"40년대 이후 30년간 지속된 호황"의 토대 위에 출현한, 세계사 최초의 "돈과 여가와 개인적 자유의 이상적 결합을 누리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것이었다. 박물적 에세이스트 찰스 패너티의 말마따나, "미 디케이드의 스타는 자아(셀프)"였다. 정치에서 종교까지, 영역을 막론하고 미국 사회에 불어닥친 자아 발견과 자기 계발의 열풍은 시대적 현상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60년대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상적 공동체주의의 실험과 좌절을 경험한 사회가 현실적 개인주의로의 안주와 침잠으로 보수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1970년대 초반 대중음악계를 주도한 싱어-송라이터의 붐은 시대의 선택이었던 셈이다.

싱어-송라이터라 함은 문자 그대로, 직접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뮤지션을 통칭한다. 하지만 시대 배경을 70년대로 국한하면 그것은 당시의 음악적 경향을 특정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모던 포크와 스탠더드 팝의 음악적 전통에 개인적 성찰과 내면적 응시를 담아냄으로써 60년대와 갈라선 뮤지션들의 전면 대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최대 히트곡이자 대중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 가운데 하나인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는 바로 그 시대의 분수령에서 70년대를 가리켰던 이정표다.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가 수록된 동명의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사이먼 앤 가펑클의 활동 반경은 물리적으로 1960년대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싱어-송라이터 경향의 직접적 원조로서 평가받는 이유는 시류의 바깥에 머물렀던 국외자적 성향에서 기인한다. 1970년대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하나인 제임스 테일러는 사이먼 앤 가펑클이 "(음악에) 그들 자신을 이입"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가져왔다"고 얘기한 바 있다.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시대의 구호가 아니라, 사랑과 이별의 성정을 새긴 개인의 구도를 노래함으로써 스스로를 차별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먼 앤 가펑클은 60년대를 통틀어 롤링 스톤스보다도 많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는 질풍노도와 같은 이념의 시대에도 정서적 위안과 같은 개인의 가치를 갈구하는 대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물론, 그런 개인적 태도는 60년대 후반 이후 밥 딜런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사이먼 앤 가펑클은 메인스트림 팝 사운드를 방법론의 일부로 취했다는 점에서 딜런과 달랐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대의 인기와 후대의 영향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피아노 반주만을 배경으로 시작하여 오케스트레이션을 동반한 웅대한 연주의 절정에서 끝을 맺는, 이 노래의 치밀한 구조와 섬세한 구성이야말로 그 표본이다. 비평가 션 이건은 그것을 "반문화가 주류로 진입한 순간"이라고 썼다. 그것은 또한 캐롤 킹과 제임스 테일러에게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지점이기도 했다.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는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놓인 가교였던 셈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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