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헤비메탈 선구자를 저능아라 했는가

2009. 1. 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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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2 블랙 새버스의 <패러노이드>(1970년)

전체 예술 분야의 모든 하위 영역을 통틀어 헤비메탈만큼 격렬한 비난과 자극적 질시를 받은 장르는 없다. 1970년대 초반 태동 당시에는 심지어 록 비평가들로부터조차도 비토를 당했을 정도다. 일례로 대중음악사가 로이드 그로스먼은 "저능아의 음악"이라고 비웃었고, 음악전문지 <뮤지션>은 "음악적 천치들의 농담"이라고 비아냥댔다. 그들의 힐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기성 사회와 기존 문화계는 이구동성, 장황한 수사와 집요한 논리로 그것의 존재방식을 문제 삼았다. 헤비메탈은 그 압도적인 음량만큼이나 시끄러운 논란거리였고 그 공격적인 연주만큼이나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런 파행의 근원에 블랙 새버스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격적인 헤비메탈 사운드의 설계자인 동시에 그 하위문화의 도안자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 폴 바티스트는 블랙 새버스가 "우연히 록 밴드의 장비를 발견한 네 명의 크로마뇽인들"이며 그들의 "가당치 않은 억지 연주"가 헤비메탈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당대 비평가들의 그런 평가는 결국, 오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블랙 새버스 최초의 히트 싱글이었던 <패러노이드>가 바로 그 증거다.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며 싱글로 먼저 공개된 <패러노이드>는 블랙 새버스가, 헤비메탈 장르 자체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오해되었음을 방증하는 노래다. "진정한 헤비메탈의 원조"로서 사운드의 독자성부터가 그렇다. 블루스의 자취가 여실했던 당대의 하드 록 밴드들에 비해, 골간만 남긴 채 그것의 흔적을 지워버린 블랙 새버스의 헤비메탈은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에 거부당했던 것이다. 오늘날 <패러노이드>가 레드 제플린의 <홀 랏 오브 러브>,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 등과 함께 대중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90년대 후반 크게 유행한 다운튜닝 방식의 선구적 연주로 꼽힌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더불어 오지 오스본의 날카롭게 비틀린 보컬 또한 전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인정받지 못한, 블랙 새버스의 새로움이었다.

게다가 '검은 안식일'이라는 밴드명의 불경과 '13일의 금요일'에 데뷔 앨범을 발표한 도발을 꼬투리 삼아 블랙 새버스를 악마주의로 몰고 갔던 세평도 곡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포영화의 제목에서 빌려온 블랙 새버스의 이름이 실상은 냉전시대에 과학기술의 음침함을 겨냥한 포석이었으며, 밴드의 작사를 전담하다시피 했던 베이시스트 기저 버틀러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배경을 호사적으로 왜곡했던 것이다. 실상 <패러노이드>는 오컬트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편집적 정신병리를 다룬 최초의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서 현실이성적이었다. 영국의 음악지 <모조>가 싱글 <패러노이드>와 그 앨범을 "아이작 아시모프풍의 순수한 에스에프"와 비견했던 연유다.

이제 <패러노이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음악이 새로움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이 음악보다 파괴적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패러노이드>는 그 분열적 증후를 먼저 포착했을 뿐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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