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신' 탄생시킨 블루스 헤비메탈

입력 2009. 1. 20. 18:56 수정 2009. 1. 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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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61 레드 제플린의 <홀 랏 오브 러브>(1969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서 가장 열렬한 환호를 받은 인물은 전설적인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설립자 지미 페이지였다. 다음 개최지인 런던을 홍보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그는 앞서 중국의 예술가들이 펼쳐낸 장대한 스펙터클의 잔상을 일렉트릭 기타 하나로 간단히 지워버렸다. 대중음악 강국으로서 영국의 위상과 국경을 넘는 젊음의 찬가로서 록 음악의 위력을 새삼 확인시킨 존재감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페이지는 신예 팝 스타 리오나 루이스와 함께 레드 제플린의 고전 '홀 랏 오브 러브'를 연주했다. 당연한 선곡이었다. 그것은 레드 제플린이 언제나 공연 마지막에 연주했던, 그들을 상징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지미 페이지의 레드 제플린은 에릭 클랩튼의 크림이 그랬듯, 처음부터 슈퍼 그룹이었다. 당대 최고 연주자들의 집합이었던 그들은 당시 최신 트렌드였던 하드 록의 어법을 정립하며 대중음악사의 물길을 바꿔놓았다. 1969년 1월 발표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으로 단숨에 소속사 어틀랜틱 레코드의 음반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고, 같은 해 10월 공개한 두 번째 앨범 <레드 제플린 2>로 순식간에 세계 최고 인기 밴드의 왕좌에 등극했다. '홀 랏 오브 러브'는 그 기념비적인 두 번째 앨범의 오프닝 트랙이자 첫 번째 싱글이었으며 레드 제플린 최초의 톱텐 히트곡이었다.

'홀 랏 오브 러브'는 무엇보다 지미 페이지의 기타 리프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노래다. 느슨하지만 원초적인 블루스의 에너지에 바탕한 페이지의 연주는 강력한 리듬 패턴과 동반하여 록 기타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물론 '홀 랏 오브 러브'의 혁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의 말마따나 "자주 모방되지만 결코 복제되지 않는" 레드 제플린 사운드의 독창적 전형은 페이지의 기타에 맞서 긴장감 넘치는 갈등 구도를 형성한 다른 멤버들의 조력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교성과 괴성 사이를 긴박하게 넘나든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롤링 스톤>의 표현처럼, "블루스 연주자와 바이킹의 신격(神格)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스터리였다. 게다가 플랜트는 신화적 모티프와 성적 판타지를 노랫말의 양 축으로 삼음으로써 서사 시인인 동시에 섹스 화신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신비주의와 물신숭배의 매개로서 레드 제플린의 환상을 창출해냈다. 그래서 비평가 토비 크레스웰은 레드 제플린을 향해 "신격화한 최초의 록 밴드"라고 평했던 것이다.

한편, 비평가 톰 문은 "로큰롤 산업에 있어서 필요가 실제로 발명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홀 랏 오브 러브'를 꼽은 바 있다.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연 여행의 와중에 각지의 스튜디오들을 전전하며 완성시킨 앨범의 제작 과정이 그랬고, 블루스의 고전을 재활용한 '홀 랏 오브 러브'의 창작 배경이 그랬다. 본래 이 노래는 윌리 딕슨이 작곡하고 머디 워터스가 히트시킨 '유 니드 러브'의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변용한 결과물이었다. 그런 적용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블루스와 헤비메탈이 분기하기 시작한 일은 우연한 필연의 부산물이었다.

박은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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