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공학 '신시사이저 혁명'의 전주곡

2009. 1. 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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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9 월터 카를로스의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 넘버 3>(1968년)

1967년 연말에 공개된 영화 <졸업>은 혼란스런 시간 속을 표류하는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60년대 청년 문화의 붕괴 양상을 폭로한 문제작이었다. 영화는 다가올 시대에 대한 불안감 또한 감추지 않았다. 감독 마이크 니콜스는 그것을 극중 주인공 아버지의 친구 입을 빌려 "그냥 한 단어로" 요약해 내놓았다. "플라스틱!"

그 단말마처럼 차갑고 짧은 낱말 속에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리라는 불길한 전망을 담아냈다. 청년세대의 이상주의적 혁명 정신이 기성세대의 자본주의적 시장체제 속으로 함몰되어 가던 60년대 말의 격류 속에서 탄식처럼 내뱉은 나지막한 비명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되돌릴 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은 대세였다. 문화의 영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마이크 니콜스의 경우부터가 그랬다. 60년대의 종말을 선언함으로써 그의 영화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란 흐름의 탄생을 이끄는 결과를 낳았다. 시대 변화의 반영인 동시에 그것의 여파였다. 정세 파악에 능했던 미술가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과 함께 66년부터 <불가피한 플라스틱의 폭발>이라 이름 붙인 발표회를 개최해 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격한 양상은 음악계에서 나타났다. 바로 신시사이저의 등장이다. 음악과 공학의 결합이 만들어낸, 기계를 악기 삼은 플라스틱 사운드가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전 음악을 연주한 작품으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밀리언셀링을 기록한 월터 카를로스의 앨범 <스위치드-온 바흐>가 바로 그 신호탄이었다.

60년대의 끝자락에 '데우스 마키나'의 상징처럼 돌출한 월터 카를로스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음악가였던 그는 로버트 무그 박사를 도와 신시사이저의 개선 작업에 참여한 공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바흐의 고전들을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소품집 <스위치-온 바흐>는 말하자면, 카를로스의 지적 모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하이브리드였다고 할 것이다. 특히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 넘버 3'는 카를로스가 완성시킨 최초의 녹음 가운데 하나였으며 <스위치드-온 바흐>에 수록되어 발매되기 전 이미 미국 '음향공학회'에서 한 시연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전자음악의 시금석이라 할 것이었다. 그것은 센세이션이었다.

물론, 오늘날 카를로스의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 넘버 3'에서 감동과 감흥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악기를 능가할 만큼 발전한 신시사이저 기술과 고전음악의 요소까지 흡수한 대중음악 저변을 고려하자면 오히려 촌스럽게 들린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최고 걸작"을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데이비드 보위의 '플라스틱 솔'에서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실험에까지 두루 미친 음악적 영향력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역사의 발전이란 시행착오 과정을 담보하기 마련이다.

참고로, 월터 카를로스는 1972년 여성으로 성전환수술(플라스틱 서저리!)을 감행해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제 그에 대한 자료는 웬디 카를로스라는 이름을 통해 검색하는 쪽이 빠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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