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완전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2008. 12. 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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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8 킹 크림슨의 <트웬티 퍼스트 센추리 스키초이드 맨>(1969)

대중음악사의 60년대는 1969년 12월6일에 급히 막을 내렸다. 롤링 스톤스가 개최한 무료 공연 '알타몬트 콘서트'가 유혈 사태로 얼룩지면서, 사랑과 평화를 자양분 삼아 피어났던 '플라워 무브먼트'의 시대가 극적인 종언을 고했던 것이다. 반면, 대중음악사의 70년대는 1969년 10월12일에 이미 막을 올렸다. 킹 크림슨의 데뷔 앨범 <인 더 코트 오브 더 크림슨 킹>이 발표된 이날, 대중음악의 '60년대성'은 미래적인 새 경향으로부터 결별을 선언당했다.

비평가 크리스 스미스의 말마따나, 킹 크림슨은 "최초의 완전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였다. 그리고 앨범 <…크림슨 킹>은 "프로그레시브 록이 독자적 장르로서 출현한 지점"이었다. 고전음악의 선율을 차용하거나 악기 편성을 도입함으로써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범을 마련했던 프로콜 하럼, 무디 블루스, 제스로 툴 등의 사운드 실험을 킹 크림슨은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장대한 구조와 복잡한 구성을 뼈대로 삼았고, 멜로트론과 각종 관악기를 외벽으로 둘렀으며, 강렬한 기타 음향과 다양한 사운드 이펙트를 덧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록 어법의 중추인 블루스의 요소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표준을 마련했다. 앨범 <…크림슨 킹>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노래 '트웬티 퍼스트 센추리 스키초이드 맨'은 그 선제적인 포고문이었다.

킹 크림슨은 자작한 새로운 소리를 불길한 미래의 전망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스스로를 60년대의 이상주의와 차별하고자 했다. 실상, '트웬티 퍼스트 센추리…'는 심포니와 재즈와 아방가르드가 뒤섞인 어둠의 심연이다. 잔뜩 일그러뜨린 그레그 레이크의 보컬과 거칠게 포효하는 로버트 프립의 기타는 혼돈에 휩싸인 미래상의 음악적 구현이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구로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묵시하는 피터 신필드의 노랫말은 잔뜩 벼린 비수처럼 섬뜩하게,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경고했다. "시인들은 굶주리고 아이들은 피흘리는" 기계와 물질의 세상이 도래하리라고 비관했다.

1969년 7월, 미국인들이 달 표면을 향해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리며 "인류의 거대한 도약"에 감탄하고 있던 바로 그때 영국의 록 밴드 킹 크림슨은 이 노래를 녹음하며 21세기에 도래할 문명의 끔찍한 파멸을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평가 매니시 아가월은 이 노래가 "거대한 리프와 울부짖는 색소폰과 종말론적 비전을 담지한 최초의 대안적 송가"라고 했다.

불행하게도, 탐욕에 눈먼 "21세기의 광인"들이 "순수한 영혼들을 폭약의 불꽃으로 난자하는" 시대에 대한 '트웬티 퍼스트 센추리…'의 예견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단 한 번만 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미지의 잔상을 남기는 <…크림슨 킹>의 표지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다. 그것은, 가진 자의 물욕이 초래한 경제 한파와 성장 만능의 구태의연한 발상이 자초한 사회 분열이란 안팎의 위기를 살아야 했던, 올해 2008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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