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정치사찰 이겨낸 '뉴토피아 송가'

2008. 12. 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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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7 존 레넌의 <이매진>(1971년)

"국가의 경계가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그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죽일 일도 죽을 일도 없겠지요/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세상은 하나가 되겠지요"

1970년 4월 비틀스라는 거대한 환상에서 빠져나온 존 레넌은 반전과 인권 운동의 첨예한 일상으로 뛰어들었다. 비틀스의 일원으로서는 말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거리낌 없이 피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음악이 그의 도구였다. 그것으로 레넌은 노동자(<워킹 클래스 히어로>)와 민중(<파워 투 더 피플>)과 여성(<우먼 이스 더 니거 인 더 월드>)과 평화(<해피 크리스마스 (워 이스 오버)>)를 위한 노래들을 만들어 냈다. <이매진>은 그 화룡점정이었다.

<이매진>은 레넌이 1971년 발표한 동명 앨범의 수록곡이다. 솔로 데뷔작 <플라스틱 오노 밴드>(1970)의 격렬한 방법론을 지양하고 좀 더 대중친화적 노선을 취한 앨범의 상징적인 서막이었다. 그러나 레넌의 온화한 음성과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온순한 음상이 만들어 낸 따뜻한 느낌과 달리, <이매진>은 음악사상 유례 없는 급진적 메시지의 선언문이다. 여기서 레넌은 종교, 계급, 국가, 사유재산 따위가 없는, 온전히 사람이 중심 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제안했다. 스스로 '뉴토피아'라 이름 붙인 신세계였다. 그것은 흔해 빠진 정치 선전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뿌리박은 호소였다.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이 <이매진>을 "대중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들" 가운데 세 번째 순위로 꼽고, "우리가 극심한 비탄을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영원한 위로와 약속의 송가"라고 상찬해마지 않은 근거도 거기 있다고 할 것이다.

<이매진>은 위력적이었다. 미국 정부가 이 노래의 발표 즈음 레넌에 대한 정치사찰을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에드가 후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제안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추인한 정치공작이었고, 레넌을 국외로 추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무려 14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당시 연방수사국이 작성한 '존 레넌 파일'을 만천하에 공개하도록 만든 존 위너 캘리포니아대 교수(역사학)는 "록 음악이 실재한 정치적 움직임과 연계할 때 강력한 정치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존 레넌은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레넌은 몽상가였던 만큼이나 행동가였다는 것이다.

1980년 12월8일 레넌의 죽음에 부친 글에서, 사회학자이자 비평가인 사이먼 프리스는 "존 레넌이야말로 '우리'를 설득력 있게 노래한 유일한 록 가수"라고 썼다. 비평가 레스터 뱅스는 "실존의 날카로운 모서리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았던 인물"이라고 했다. 출범 1년 만에 돈과 계급과 종교의 잣대로 이 나라를 동강내버린 지금 정권 앞에서 <이매진>을 다시 들어야 할 이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생님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거듭 들려줘야 할 이유와 다름 아니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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