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일그러진 사운드에 '방아쇠'

2008. 12. 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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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6 크림의 <선샤인 오브 유어 러브>(1968년)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인-아-가다-다-비다>(1968년)

1968년은 현대사의 줄기에 맺힌 굵은 옹이다. 세상을 격동케 한 사건들로 숨가빴던 시간의 결절점이다. 체코의 '프라하의 봄', 베트남 전쟁의 '구정 공세', 미국의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프랑스의 '5월 혁명' 등은 극단적으로 대립한 정치적 행위와 뚜렷하게 엇갈린 사회적 행동이 만들어낸 역사의 파편들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깊고 선연한 흔적으로 세계에 내재한 성취와 상처의 진원이다.

반면 대중음악사의 1968년은 이상하리만치 가라앉았다. 1967년 절정을 이뤘던 대중음악의 반문화(카운터컬처)적 영향력은 이듬해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세상으로부터 은둔, 도피하는 수동적 양상이 두드러졌다. 극심한 사회적 혼돈의 연쇄작용 혹은 반작용이라고 할 것이었다. 마하리시 요기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간 비틀스의 행보는 당대의 상징적 사건이었고, 마이크 니콜스의 연출과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이 완성시킨 영화 <졸업>은 당대에 대한 은유적인 작품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이키델릭의 초월적 특성은 불가사의한 낭만으로 마지막 불꽃을 뿜었다. 특히, 크림의 '선샤인 오브 유어 러브'와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인-아-가다-다-비다'는 완벽한 1968년의 배경음악이었다.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의 결합으로 처음부터 '슈퍼그룹'이라 불렸던 영국의 크림과, 그저 그런 클럽 밴드에 불과했던 미국의 아이언 버터플라이는 애초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이종이었다. '선샤인…'과 '인-아…'가 발표되기 전까지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같은 레코드사(애틀랜틱)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시대상이 그들을 함께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선샤인…'과 '인-아…'('인 더 가든 오브 이든'을 음차하여 비튼 표현)의 탈속적 분위기 물씬한 제목과 가사는 무의식을 통해 투영한 시대적 반응이었다. 그에 열광한 젊은이들의 심리적 기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옳고 그름의 경계조차 모호해진 현실로부터의 탈피였던 셈이다. 판매 기록이 그것을 입증한다. 당시 기준으로 <선샤인…>은 '애틀랜틱'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었으며, '인-아…'가 수록된 동명 음반은 같은 레이블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었다.

두 작품이 헤비메탈 양식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결과적 동질성이다. 무엇보다, 심하게 일그러진 사운드의 일렉트릭 기타 리프(반복 악절) 연주가 노래의 특징을 결정짓는다는 점이 그렇다. 그것은 사이키델릭 록과 블루스 록의 요인들을 흡수하여 좀 더 직설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로 전이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방법론이었다. 공동체적 이상의 좌절이 '개인주의의 70년대'(미 디케이드)로 변이하던 과도기의 음악적 반영이었다. 한 시대의 끝이 다음 시대의 시작과 맞물리는 귀결과 다름 아니었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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