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록'의 직접적 원형

2008. 12. 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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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5 무디 블루스의 <나이츠 인 화이트 새틴>(1967년)

"역사의 진보는 불복종과 반항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했던 문예비평가 오스카 와일드의 견해를 누구보다 신봉한 집단은 대중음악 비평가들, 특히 베이비붐 세대 미국인 비평가들이었을 것이다. 기성과 권위를 거부하는 상징으로서 로큰롤의 탄생을 목격했던 그들은, 불복종과 반항이 곧 시대의 공기였던 1960년대에 대중음악 비평의 논리적 바탕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70년대 후반 펑크 록의 탄생을 열렬히 환영했다. 더불어 그들은 논거의 선명성을 위해 태도와 양식의 차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장르의 음악을 철저히 배격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름마저 '진보적'이라 불린 프로그레시브 록이 바로 그 공격 대상이었다.

당대의 미국 비평가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이 무엇보다, 고전 음악의 방법론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라고 비판했다. 블루스에 뿌리를 둔 록 음악의 전통과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모순이었다. 외부로부터의 음악적 영향을 흡수함으로써 성장해 왔던 로큰롤의 진화 과정을 부인하는 꼴이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전음악의 전통이 부재한 미국사의 특수성에서 생겨난 무의식적 배타성의 발현이라고 할 것이었다. 대중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굵직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 가운데 미국 출신이 단 한 팀도 없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디 블루스가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영국 밴드들에 대해 "소니 보이 윌리엄슨(20세기 초의 미국 흑인 블루스 뮤지션)이 아서 왕의 전설을 노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얘기한 배경도 다를 바가 없다. 거기에는 무디 블루스의 경험담이 함께 담겨 있다.

1964년 '고 나우'라는 리듬 앤 블루스 노래로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던 무디 블루스는 이후 3년 동안 침체만을 거듭했다. 새로운 멤버 존 로지와 저스틴 헤이워드의 영입을 계기로 그들은 밴드의 활동사는 물론이고 대중음악사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노선 변화를 감행했다. 프로콜 하럼의 '어 화이터 셰이드 오브 페일'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의 직접적 원형으로 꼽히는 노래 '나이츠 인 화이트 새틴'은 무디 블루스가 수정한 좌표 위에서 도달한 신천지였다. '나이츠 …'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음악적 특성을 규정한 지침이었다. 한 남자의 일생을 하루의 일상으로 은유한 앨범 <데이스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으로 포진한 이 노래는 7분30초를 넘는 장대한 연주시간, 런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대동한 심포 사운드, 신시사이저의 원형으로서 멜로트론의 전면적 사용, 그리고 내레이션을 통한 서사의 접목 등을 통해 록 음악 스타일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던 것이다. 불과 6개월 앞서 발표된 '어 화이터 …'와 비교해도 괄목할 만한 형식적 진보였다.

'나이츠 …'와 그 수록 앨범 <데이스 …>는 애초, 새로운 음향 기술을 선전할 목적으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록버전화하려던 레코드사의 의뢰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무디 블루스는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 음반업계의 상업적 전략에 대한 불복종과 저항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냈던 셈이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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