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인권 요구한 '정치적 솔 음악'

입력 2008. 11. 11. 20:01 수정 2008. 11. 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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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51 어리사 프랭클린의 <리스펙트>(1967년)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약간의 '존중'뿐이에요."

<리스펙트>의 도입부는 말한다. 하지만 애원이나 간청의 목소리가 아니다. 단호할 뿐만 아니라 당당하기까지 한 어조다.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인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어리사 프랭클린은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소리 높여 노래한다. 인권 운동의 약진에 힘입은 사회적, 정치적 각성이 1960년대 후반 솔 음악의 지형도를 바꿔놓은 순간이다.

<리스펙트>는 문자 그대로, '존중'에 관한 노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는 음악적 권리장전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 인종 차별의 이데올로기는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 본능의 발현이 아니라 인간 탐욕의 발명품이었다는 말이다. 미국의 흑인들을 "역사상 가장 잔인한 형태였던 노예제"(하워드 진)로 몰아넣은 이론적 배경에도 인종 우열의 가공된 신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결여였다. 60년대 미국의 인권 운동은 결국, 당연한 존엄권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그 속에서 솔 음악을 통한 흑인들의 발언은 점차 강력해지기 시작했으며, 그 줄기는 어리사 프랭클린의 <리스펙트>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본래 <리스펙트>는 '서던 솔'의 대가 오티스 레딩이 1965년 발표한 노래다. 60년대 전반을 주도한 모타운 중심의 '노던 솔'이 팝의 방법론으로 '표백한 흑인음악'이었던 데 비해, 스택스 레이블을 거점으로 한 서던 솔은 가스펠의 자취가 강한 '좀더 검은 음악'이었다. 레딩을 통해 60년대 중반 흑인음악의 주류로 진입한 서던 솔은 어리사 프랭클린을 거쳐 백인 관객들에까지 침투하는데, 그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바로 <리스펙트>였던 것이다.

어리사 프랭클린은 "역사상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로 흔히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리메이크는 없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리스펙트>가 레딩이 아닌 프랭클린의 버전으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압도적인 가창 능력에 힘입은 바였다. 레딩조차 "그 아가씨가 내 노래를 앗아가 버렸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2004년 음악지 <롤링 스톤>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노래 500선"의 다섯 번째 순위에 <리스펙트>를 올려놓으며 어리사 프랭클린의 버전을 지목한 이유도 마찬가지다.(참고로, 여성 뮤지션의 노래로서 가장 높은 순위이기도 했다.)

열네 살에 데뷔한 재능과 열 장의 앨범을 발표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어리사 프랭클린은 <리스펙트>를 통해 순식간에 당대 가장 중요한 뮤지션으로 대두했다. 비평가 브라이언 워드는 이 노래가 "정치적인 솔 음악의 확산을 유도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했고, 언론인 필 갈랜드는 심지어 "새로운 미국 국가"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리스펙트>에 담긴 인간 존중의 메시지가 인종 차별 사회에 미친 파장과 영향을 평가한 찬사들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자를 맞이한 이 즈음이기에 이 노래의 의미는 더욱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는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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