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사운드의 새 천지창조

2008. 10. 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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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46.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스>(1966년)

1966년 10월 비치 보이스는 전대미문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싱글 <굿 바이브레이션스>를 발표했다. 6개월 동안 캘리포니아 인근 5개의 스튜디오를 전전한 끝에 완성시킨 노래였다. 그것을 위해 비치 보이스는 6만달러 안팎을 지출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 선수 연봉이 사상 처음 10만달러를 넘어선 것이 같은 해였다. 엘에이 다저스의 전설적 투수 샌디 코펙스가 12만달러짜리 계약에 성공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고려할 때, <굿 바이브레이션스>의 제작비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액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굿 바이브레이션스>는 역사상 가장 값비싼 레코드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하지만 보상 또한 거대했다. 미국과 영국 차트를 석권하며 밀리언셀링을 기록했다. 대중적 성공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방법론의 신기원으로 평단의 극찬까지 획득했다. 실제로, 발표 즈음 <굿 바이브레이션스>는 비교 대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작품이었다. 20명이 넘는 세션 뮤지션이 참여한 90시간 분량의 녹음을 3분35초의 연주시간으로 압축 편집해낸 이 노래는 당대 스튜디오 기술의 집대성이기도 했다. 악기별 분리 녹음, 무수한 반복 세션과 오버더빙, 기묘한 음향장치인 '테레민'의 사용, '컷 앤 페이스트'(자르고 붙이기)와 다단계 믹스의 편집방식까지,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방식들을 광범위하게 적용한 결과였다.

그 미로 같은 작업 공정의 추동엔진은 밴드의 리더인 브라이언 윌슨의 집요함이었다. 필 스펙터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그는 비치 보이스를 스타로 만들어준 서프 사운드를 용도폐기하고, 스튜디오의 사운드 실험에 몰두했다. 미국 팝의 가장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앨범 <펫 사운즈>(1966)의 제작에서부터 본격화한 윌슨의 실험은 극단적인 한계 지점에 이르러 <굿 바이브레이션스>의 우주를 창조해냈던 것이다.

필 스펙터가 자신의 작품을 "청소년을 위한 작은 심포니"라고 칭했던 것처럼, 브라이언 윌슨은 이 노래를 "주머니 속의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그래서 비평가 토비 크레스웰은 "스펙터가 스튜디오를 악기처럼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면, 윌슨은 <굿 바이브레이션스>를 통해 그것을 진일보시킨 주인공이었다"고 평했다. 데이브 마시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이 "록을 감성의 음악에서 기술의 음악으로 바꿔놓은" 전환점이라고 분석했다.

<굿 바이브레이션>의 성공에 고무된 브라이언 윌슨은 역사상 최고의 걸작을 만들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지나친 집착이 발목을 잡았다. 지지부진하게 앨범 <스마일>의 제작을 진행해가던 윌슨은 이듬해 발표된 비틀스의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를 들은 뒤 급기야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이 먼저 거기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서전트 페퍼스…>가 애초 브라이언 윌슨과 그의 작품에서 궁극적인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굿 바이브레이션스>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인 셈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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