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과 청년정신의 '핵 융합'

2008. 10. 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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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45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

"서른 살이 넘은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말라." 과격하고 파격적인 행동주의 좌파 정당 '유스 인터내셔널 파티'(흔히 '이피'라 칭한다)의 공동 설립자 제리 루빈이 한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1968년 시카고에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직후 했다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인 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더욱 주목할 명제였다. 요컨대 그것은 60년대를 관통한 청년문화의 이념적 등뼈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청춘의 이상주의는 기성세대와 불화하고 단절하는 지점에서 싹텄던 것이다. 후의 노래 <마이 제너레이션>에 당대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근원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나의 세대'는 부모의 그것과 다르리라는, 달라야 한다는 본능의 표출이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흔히 '모드(Mod)의 송가'로 불린다. 60년대의 영국 청년문화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양상이었던 모드는 모더니스트의 약칭으로, 동시대 청소년들의 생활규범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문화학자가 동의하듯, 모드는 광범위한 규모로 발현한 최초의 하위문화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탈리아산 스쿠터, 프랑스풍 헤어스타일, 그리고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으로 대표되는 모드족의 취향은 계급문화가 잔존하는 영국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반항적 태도였던 따름이다. 멤버들 스스로가 그 일원이었던 후는 모드의 상징적 존재였고, <마이 제너레이션>은 그들을 동세대의 대변인으로 발돋움시킨 선언문이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무엇보다, 질풍노도의 청춘을 구체화한 노랫말로 대중음악의 역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난 늙기 전에 죽고 싶다." 이 노래의 핵심 구절을 통해 후는 로큰롤과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의 접점을 음악적 구호로 요약해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거칠고 공격적이며 원초적인 이 노래의 사운드가 세련된 리듬 앤 블루스를 선호한 모드족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후가 발표한 노래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 제너레이션>이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그 메시지의 폭발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펑크 록과 헤비 메탈의 전형을 보여준 파괴적인 사운드는 자체로도 유의미하다. 그래서 비평가 그렉 쇼는 "그럼에도 메시지는 신경 쓰지 말라. 그냥 레코드를 들어보라"고 쓰기도 했다. 실제로, 줄을 끊을 듯 긁어댄 피트 타운센드의 기타와 세트를 부술 듯 두들겨댄 키스 문의 드럼은 전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가사를 더듬은 로저 달트리의 괴상한 보컬도 그렇다. 사운드의 파격은 메시지에 조응하는 피드백이었던 셈이다.

누구나 한 번은 청년기를 거친다. 기성세대가 "청년을 이해한다"고 오해하는 근거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해봐서 안다"며 젊은이들의 발언을 억압하는 지도자의 심리기저도 마찬가지일 터다. 후의 <마이 제너레이션>이 '우리 세대'에도 젊은이들을 소구하는 강력한 언명으로 남아 있는, 그리고 다음 세대에도 남아 있어야 할 이유의 당위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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