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사로잡은 '친숙함의 기적'

2008. 9. 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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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44 비틀스의 <예스터데이>(1965년)

당연한 말이겠지만, 표절은 창작자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악의가 없는 무의식적 표절의 경우라고 다르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때문에 그 아이디어들 가운데 완전히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회의하는 일은 창작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레너드 번스타인은 작곡가로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 때마다 지휘자로서 기억에 담아둔 악상을 지우기 위해 동등한 노력을 해야 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폴 맥카트니가 <예스터데이>의 멜로디를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부지불식간에 다른 노래의 선율을 베낀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가 될 운명을 타고난 작품이 <스크램블드 에그스>라는 엉뚱한 가제의 초안으로 1년 반 동안이나 데모 테이프 속에서 삭아야 했던 이유다.

<예스터데이>는 기네스북이 공인한, "세상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노래"다. 무려 3천 개 이상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발표되자마자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음은 물론이고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방식으로 폴 맥카트니가 느꼈던 불안감을 방증한다. <예스터데이>의 멜로디가 원작자로서도 무의식적인 표절을 의심할만큼 경이적인 친숙함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폴 맥카트니가 <예스터데이>를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한 노래"라고 언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기사작위까지 받은 영국의 작곡가 겸 지휘자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예스터데이>를 꼽았고, 음악학자 윌프레드 멜러스는 그것을 "작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예스터데이>의 단순한 구조와 단출한 연주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명제의 화신과도 같다. 불과 2분 남짓한 연주시간에 담긴 풍성한 의미는 이후 40년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는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발라드의 역사는 <예스터데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음악 외적인 의미도 크다. 무엇보다 비틀스로서는 처음으로 개별 멤버의 솔로 작품을 앨범에 수록한 경우였다. <예스터데이>는 전적으로 폴 맥카트니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작사와 작곡, 보컬과 기타 연주까지 혼자 담당했다. 그의 유일한 조력자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었다. 이 노래의 유명한 현악 앙상블은 마틴이 제안하고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이는 이후 조지 마틴과 비틀스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이정표이기도 했다. 비틀스 후기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음악적 실험은 스튜디오의 마법사로서 마틴의 기여가 있었기에 완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노래라는 것은 없다. 다만 거기에 근접하려는 시도가 있을 뿐이다. <예스터데이>는 대중음악이 그런 '불가능한 임무'의 달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지점이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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