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저항 낳은 '반골적 보컬'

2008. 8. 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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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40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댄싱 인 더 스트리트>(1964년)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탭 댄서 그레고리 하인스가 장르 경계를 허물고 동반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백야>(1985)에서, 춤은 자유를 향한 열망의 형상화로 제시된다. 체제에 억압받는 몸과 속박에 저항하는 영혼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움튼 춤사위가,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의 정의처럼, "몸의 정수에 담긴 내밀한 언어"를 드러내는 것이다. 단 한 줄의 정치적 메시지조차 담기지 않았음에도 <댄싱 인 더 스트리트>가 미국 공민권운동의 찬가로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던 이유를 그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다. '거리에서 춤출' 자유의 메타포와 터질 것 같은 에너지의 리듬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시너지를 대중이 읽어냈다는 것이다.

1964년 여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른 <댄싱 인 더 스트리트>는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최대 히트곡이다. 공민권운동이 절정을 향해 급박하게 치닫던 분위기 속에서 상승기류를 탄 이 노래는, 같은 이유 때문에 필라델피아에서 와츠(로스앤젤레스)까지 인종폭동을 확산시킨 원흉이라는 비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댄싱 인 더 스트리트>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노래가 모타운에서 발매되었다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모타운은 강경파들로부터 "백인에게 흑인을 파는 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상업주의의 낙인이 찍히기도 했을 만큼 인권운동의 현실로부터 한발 비켜선 자세를 고수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춤을 춘다"는 내용을 시종일관 변주할 뿐이다.

그럼에도 <댄싱 인 더 스트리트>가 정치적 표명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반델라스의 리더이자 리드 보컬리스트인 마사 리브스의 목소리에 녹아들어 있는 반골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윌리엄 스티븐슨과 함께 이 노래를 만든 원작자 마빈 게이가 지적한 바가 그것이다. 그는 반델라스의 '색깔'이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하면서도 "<댄싱 인 더 스트리트>와 같은 노래에서 그들이 포착해낸 핵심이 내게는 정치적으로 느껴졌다"고 덧붙인 바 있다. 결국, <댄싱 인 더 스트리트>에 정치색이 있었다면 그것은 비평가 데이브 마시의 평가처럼 "인권운동의 일환으로서 열정을 가지고 거리에 나선 수많은 미국인들에 대한 언급"이라는 측면에서 "제작 시점의 상황과 결코 완전히 유리될 수 없다"는 태생적 여건에서 비롯했다고 할 것이다. 마사 리브스의 활력 넘치는 보컬이 화학적 상승작용의 촉매로 기능하며 <댄싱 인 더 스트리트>를 저항가로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말이다.

모타운에 가수로 지원했으나 비서로 채용되었던 마사 리브스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관철시켰던 사람이다. 베리 고디의 '빅 브러더' 식 통제에 반발한 최초의 모타운 소속 가수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부당함에 맞서는 당당함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노래는 그런 그의 열망을 형상화한 도구였다. 이 여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몸짓이 말하는 내밀한 언어를 <댄싱 인 더 스트리트>에서 가늠할 수 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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