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도 부활 이끈 사재혁..4번의 수술 이겨낸 인간승리

2008. 8.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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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혁은 올해 23살의 어린 역사(力士)지만 역도 선수가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은 모두 겪어봤다.

벗어날 만하면 찾아오는 부상이 최대 암초였다. 한때는 바벨을 놓을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이미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홍천중 1학년 때 체육시간에 역기를 들다 우연히 역도를 시작한 사재혁은 선수생활 시작 1년 만인 1998년 소년체전 50㎏급에서 합계 1위에 오르며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1년 부상과의 질긴 악연이 시작됐다. 홍천고 2학년이던 그는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무릎 부상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3년에는 왼쪽 어깨 부상까지 찾아왔다. 두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한창 기량을 키워야 할 스무살에 사재혁은 부상과의 힘든 싸움을 벌여야했다.

무릎과 어깨 부상이 완쾌될 즈음인 2005년에는 훈련 중 오른 손목을 다쳤다. 네번째 수술대에 올랐다. 두각을 보인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부상으로 신음하던 한국체대 시절 그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었다.

훈련할 수 있는 시간보다 재활에 쏟아야 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더이상 역도와는 인연이 없는가 싶었다. 사재혁은 "그때는 정말 역도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재혁에게는 '올림픽 메달'의 꿈이 있었다. 사재혁은 "올림픽에 나가 꼭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로 재활에만 매달렸다"고 고백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사재혁은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훈련에만 몰두했고, 2007년부터는 다시 금메달 후보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2007 코리아컵 왕중왕 대회에서 한국신기록을 네 차례 갈아치웠다. 사재혁은 "코리아컵 대회를 통해서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용상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해 남자 역도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훈련 도중 또다시 다친 팔꿈치 부상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무리는 아니었다. 어렵게 끌어올린 기록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올림픽 직전 훈련에서는 인상 163kg, 용상 208kg을 들어 올려 합계 371kg을 기록하며 메달 기대감을 높였다.

시련을 극복해낸 의지와 올림픽을 향한 강한 승부근성이 사재혁의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베이징 |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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