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주조한 최고의 '뉴욕 음악'

입력 2008. 8. 7. 18:21 수정 2008. 8. 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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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38. 라이처스 브러더스의 <유브 로스트 댓 러빙 필링>(1964년)

"기분이 좋지 않아요." 영화 <맨해튼>(1979)에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우디 앨런)에게 사춘기의 어린 연인(마리엘 헤밍웨이)이 내뱉은 답이다. 구구한 대사보다 외려 더욱 절절한 감정이다. 그렇게, 때론 문장 한 줄이 책 한 권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해주기도 한다. "내가 입맞춤할 때 당신은 더 이상 눈을 감지 않는군요." 심장을 뛰게 만들던 설렘이 사라지고 머리로 인지하는 관성만 남은 연인의 관계를 이보다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유브 로스트 댓 러빙 필링>의 첫 소절은, 역사상 최고는 아닐지언정, 신시아 웨일과 배리 만 콤비가 써낸 최상의 문장임에 분명하다.

신시아 웨일과 배리 만은 캐롤 킹과 제리 고핀, 엘리 그리니치와 제프 배리의 경우처럼, 부부이자 작곡 파트너로 시대를 풍미했다.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필 스펙터의 요청으로 두 사람이 써낸 <유브 로스트…>는 듣는 이의 폐부에 아련한 통증을 남기는 노랫말로 즉각적인 히트(65년 2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40년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상심한 연인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불멸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통산 천만 회를 훌쩍 넘는 방송 횟수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제치고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애청된 노래"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유브 로스트…>는 당대 뉴욕 음악산업의 분업화된 전문가 시스템이 만들어낸 궁극의 성취였다. 웨일과 만 콤비의 작곡에서 스펙터의 녹음과 레킹 크루의 연주까지, 각 분야 최상의 인력이 동원되어 이른바 '월 오브 사운드'의 완결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흑인 여성 그룹을 음악적 매개로 삼아왔던 60년대 초반 뉴욕 음악계의 일반적 관례를 벗어나 이 노래를 백인 남성 듀오가 불렀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라이처스 브라더스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과감한 변화의 포석이었다.

당시 녹음세션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바니 케셀에 따르면, 필 스펙터는 "마치 모스크바를 폭격이라도 하려는 듯, 전략을 짜내는데 전력했다"고 한다. 스펙터가 라이처스 브라더스를 선택한 배경에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흑인보다 더 흑인다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게 근거였다.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의 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블루-아이드 솔'이라 일컬어지는 하위 장르가 바로 빌 메들리와 바비 햇필드로 구성된 라이처스 브라더스를 원조 삼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스펙터의 전략은 성공했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유브 로스트…>는 60년대 초반을 지배했던 뉴욕 음악계의 '스완 송'이 되고 말았다. 비틀스를 필두로, 직접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이 도래함에 따라 뉴욕이 자랑하던 전문가 분업조직은 변화에 뒤처진 비대한 공룡의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음악산업의 '게임의 규칙'이 송두리째 뒤바뀐 것이다. "뭔가 아름다운 것이 죽어가고 있어요/ 당신은 그 사랑스런 느낌을 잃어버렸군요." 어쩌면 <유브 로스트…>는 시대의 변화를 예감한 데자뷔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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