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라면 싫어, 비빔국수 해줘"

2008. 8. 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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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현순 기자]

▲ 토마토도 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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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비가 그치고 반가운 햇살이 나온 일요일 오후. 밖을 들락거리던 남편이 "출출한데 뭐 먹을 거 없나?" 한다. 평소 라면을 즐겨먹었던 남편인지라 "그럼 라면 끓여먹으면 되겠네"했더니 "나 이젠 라면 싫어졌어. 늙었나봐. 오랜만에 비빕국수 해줄래? 오늘은 웬지 비빕국수가 먹고 싶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깐 라면 사다 놓은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라면이 줄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보통 때는 저녁을 먹고나서도 출출하다면서 라면을 끓여 먹던 남편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한달에 한번 라면을 먹을까 말까하기에 라면은 남편을 위해서 사다 놓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국수삶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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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잠깐 밖에 나갔다 올테니깐 비빕국수를 해달라고 한다. 끓는 물에 국수를 삶았다. 한번 끓을때 찬물을 붓고 다시 한 번 끓여주었다. 이젠 라면이 싫어졌다니 내가 더 번거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라면을 싫어하니깐 그마음을 알 듯했다.

그동안 남편은 라면을 끓이기 전에 "나 지금 라면 끓여 먹을건데 당신 것도 끓일까?"라고 묻곤 했었다. 당연히 난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유라면, 김치라면, 매운고추를 넣고 끓인 매운라면 등 다양하게 끓여 먹곤했었다.

김치라면이나 매운라면은 얼큰하다고 하면서 나한테도 맛을 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난 한번 맛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후루룩 후루룩'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맛있게도 먹던 라면이 이젠 싫어졌단다. 그러고 보면 여간한 일에서는 자신이 늙었다는 표현을 잘하지 않는 남편이 라면이 싫어져 늙었다고 하니 조금은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나이는 못 속이지' 혼자말로 중얼거려 본다.

▲ 오이, 잘게 썬 김치,설탕, 참기름, 깨소금, 고추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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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순

어느새 국수가 잘 끓고 있다. 국수가락이 투명한 것이 다 익은 것같다. 찬물로 씻어 소쿠리에 건져놓았다. 조금 신배추김치를 잘게 썰고 오이도 썰었다. 고추장, 참기름, 파, 깨소금, 진간장도 조금, 후추와 물빠진 국수를 넣고 비벼주었다. 마침 토마토도 있기에 비빔국수위에 빨간 토마토도 썰어 얹어주었다.

오랜만에 삶은 국수라 조금 많이 삶아졌다. 둘이 먹고도 남아 남편한테 더 먹겠냐고 하니깐 버리지 말란다. 이따가 또 먹는다고. 글쎄 퉁퉁 불은 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 어쨌든 남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거칠어진 얼굴 위에 잔주름이 더 늘어난 것이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는 세월 앞에서 이길 장사 진짜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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