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사운드의 원조

2008. 7. 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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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37. 킹크스의 <유 리얼리 갓 미>(1964년)

"온 세상이 무대"라고 했던 셰익스피어의 비유는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통해, 무적함대의 식민정복 이래 가장 강력한 양상으로 구현되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는 단지 영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성공을 거두거나,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영국 출신이라 오인되는 해프닝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17~18세기 모든 영국 함선이 정복전쟁에 나서지는 않았던 것처럼, 당시 모든 영국 그룹이 해외 진출에 안달했던 것은 아니다. '휘청대는 런던(스윙잉 런던)'의 절정기에조차 무신경으로 일관했던 런던 토박이 킹크스가 그 대표격이다.

킹크스는 흔히 비틀스, 롤링 스톤스, 후와 함께 당대의 '빅4'로 불리는 밴드다. 레이와 데이브 데이비스 형제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그들은 영국 '뮤직 홀'(일종의 버라이어티 쇼) 전통을 로큰롤과 결합해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고, 그 덕분에 자국민들에게서 누구보다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킹크스의 영국 문화에 대한 천착과 외국 진출에 대한 무관심은 미국에서의 활동금지 사건으로도 명백히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미국 순회공연 이후 석연치 않은 이유로 4년 동안이나 음악활동을 거부당했음에도 별다른 이의제기도 없이 본국에 눌러앉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 결과 킹크스는 대중적 성공에 심각한 타격을 입긴 했지만, 비평가 니컬러스 샤프너의 지적처럼 "모든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국인"이 되었고, 밴드의 리더인 레이 데이비스는 켄 에머슨의 평가처럼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으로 사회를 기록하는 팝 음악의 발자크"로 성장했던 것이다.

<유 리얼리 갓 미>는 킹크스의 세 번째 싱글이었고 최초의 히트곡이었다. 영국에서 1위, 미국에서 톱10을 기록한 이 싱글은 당시 비틀스의 노래들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100만장 넘게 팔린 기념비적 레코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는 무엇보다 그 거칠고 파괴적인 사운드에서 돌출한 것이었다. 일그러진 기타음을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퍼즈박스(소리를 뭉그러뜨리는 이펙터 장치)의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 지글거리는 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파워코드(3도 음을 배제한 약식 코드)를 도입함으로써 이후 등장하는 모든 강력한 사운드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유 리얼리 갓 미>는, 이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보다 앞서 헤비메탈의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엠시5보다 먼저 펑크 록의 전범을 마련했다는 견해에 모자람 없는 혁신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딥 퍼플의 존 로드가 이 노래의 녹음 세션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은 전설로 남았다. 게다가 평자에 따라서는 90년대의 브릿팝조차 이 노래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 리얼리 갓 미>는 무엇보다, 킹스멘의 <루이 루이>와 대서양 너머 짝을 이뤄, 청춘의 이미지를 구체적인 사운드로 귀착시켰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다. 책상머리의 입시경쟁에 내몰린 요즘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무엇이 그 속에는 살아 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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