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블루스 록의 이정표

2008. 7. 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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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35.애니멀스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1964년)

작가 노먼 메일러가 1950년대 후반의 미국 청년문화에서 주목했던 어떤 경향은 60년대 영국에서 되레 완연한 현상이 되었다. 이른바 "하얀 검둥이"(화이트 니그로)들을 통해 조성된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의 붐이다. 블루스와 리듬앤블루스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한 그것은, 독창적인 재해석판을 내놓으며 비틀스를 위시한 머지비트(머지는 리버풀을 흐르는 강이다) 진영과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한 축을 형성했다. 로큰롤의 빈자리를 알맹이 없는 아이돌 팝 상품과 과장된 낭만주의의 걸 그룹 사운드로 채우는 데 급급했던 미국 음악업계가 영국 뮤지션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배경에는 인종적 편견 때문에 근원을 왜곡한 모순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니멀스는 영국의 블루스 리바이벌 붐이 배태한 최초의 국제적 성공작이었다. 동물적인 거침과 격렬함이 곧 밴드의 이름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애니멀스는 블루스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로큰롤과 현대적으로 결합시킨 주인공이었다. 특히, 보컬리스트 에릭 버든의 울부짖음은 당대에 있어 흑인보다 더 흑인다운 질감을 담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비평가 레스터 뱅스는 화이트 니그로로서 에릭 버든의 등장이 "검둥이 자신들이 흑인으로 변해갔음을 고려할 때 특히나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평했다. 순화된 당대의 흑인음악보다 탄광촌 노동자 계급 출신 백인 에릭 버든의 노래가 오히려 더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은 애니멀스의 최초이자 최대 히트곡이다. 영국에서는 물론이고,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와중에 비틀스와 관련이 없는 노래로는 처음으로 미국 차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비평가 제프리 스톡스는 그 과정에서 이 노래가 "거의 모든 팝 음악의 규칙을 혁파했다"고 썼다. 우선, 노랫말이다. <하우스…>는 본래 미국의 오래된 구전가요로서 어린 창녀의 한탄이 그 골자다. 비록 관점을 남성형으로 바꿔놓기는 했지만 청소년 시장을 겨냥한 노래로 삼기에는 위험한 시도였다. 4분30초에 달하는 연주시간도 극히 이례적이었다. 3분이 넘는 노래는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의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3분이 채 못 되는 길이의 싱글 버전으로 편집되어 발매되고 말았지만 과감한 도전이었다.(오리지널 버전은 앨범에만 실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혁신적인 면은 그 사운드에 있었다. 애수 띤 기타의 아르페지오와 출렁거리는 해먼드 오르간의 론도가 에릭 버든의 야수 같은 절규와 만나는 지점에서 "최초의 포크 록"이 탄생했고 영국 블루스 록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롤링 스톤스의 거친 리듬 앤 블루스와 밥 딜런의 걸작 <라이크 어 롤링 스톤>, 도어스 특유의 오르간 사운드가 어떤 식으로든 그로부터 영향 받았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우스…>는 온고지신에 토대한 새로운 표준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영국의 블루스가 모방에서 재해석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블루스가 포크 록과 블루스 록으로 변이하는 면모를 전시하는 살아 있는 화석으로 남았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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