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키·당돌함으로 '기존관념' 파괴

입력 2008. 6. 12. 19:41 수정 2008. 6. 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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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로네츠의 <비 마이 베이비>(1963년)

유명한 교향곡 5번의 도입부에 관하여 베토벤은 "운명은 그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부연했다. 인생의 비장함을 묘사한 음악적 어휘였다. 하지만 현대의 청소년들에 이르러 그런 해석은 고루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운명의 두드림이란 첫사랑에 설레어 고동치는 심장박동 쪽에 더 가까운 법. 그 느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인생은 경쾌하게 생동하는 리듬으로 내달았던 것이다. 로큰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트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비 마이 베이비>의 도입부에서 드럼의 바이욘 비트(브라질에서 유래한 리듬양식)가 만들어내는 진폭 큰 파장은 바로 그 상징적 음향이었다.

1963년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른 <비 마이 베이비>는 3인조 걸 그룹 로네츠의 데뷔곡이자 최대 히트곡이다. 베로니카와 에스텔 베넷 자매, 그들의 사촌 네드라 탤리로 구성된 로네츠는 기존의 여성중창단들과는 대척적인 개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당대에 "신은 노래하는 흑인 소녀의 형상"이었다고 한 작곡가 제리 고핀의 표현에 빗대자면 그들은 '추락한 신' 쪽이었다. 맑고 순수한 목소리로 수줍게 노래하던 여타 걸 그룹들과 달리, 로네츠는 베로니카 베넷의 위태로운 허스키로 당돌하게 주장하는 '되바라진 계집애'들이었다. 시렐스가 "내일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라고 요청했던 데 반해, 로네츠는 "당신이 내게 한 번 키스할 때마다 난 세 번씩 되돌려줄 것"이라며 "나의 연인이 되어주"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소녀들의 '배후'에는 필 스펙터가 있었다.

그 자신 뛰어난 프로듀서인 제리 웩슬러가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라고 칭했던 필 스펙터는 약관에 이미 히트곡 제조기이자 "청년 거물(틴에이지 타이쿤)"로 불린 인물이다. "독자적인 사운드의 정경"을 "선율과 가사만큼이나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게 만듦으로써, 프로듀서의 역할과 위상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 기준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펙터의 사운드 혁명은 흔히 '월 오브 사운드'로 요약된다. 각각 두 대 이상의 기타, 베이스, 드럼, 퍼커션에다, 현과 혼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캐스터네츠와 탬버린까지 동원하여 벽돌처럼 촘촘하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 거대한 '소리의 장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음악을 필 스펙터 본인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교향곡"이라고 했고, 비평가 로버트 파머는 "온갖 장식을 곁들인 바그너 풍의 로큰롤"이라고 했다.

<비 마이 베이비>는 필 스펙터가 최대치를 발휘한 노래다. 캐롤 킹과 제리 고핀 부부에 쌍벽을 이루는 송라이팅 커플 엘리 그리니치와 제프 베리를 파트너 삼아 곡을 썼고, 모타운의 '펑크(funk) 브라더스'와 스택스의 '멤피스 그룹'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세션맨 그룹으로 꼽히는 '레킹 크루'에게 연주를 맡겼다. 로네츠의 방점으로 완성된 이 노래는 결과적으로, 미국 팝의 위대한 성취 가운데 하나인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스>에 영감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신디 로퍼의 <걸스 저스트 원트 투 해브 펀>와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을 배태한 바탕이 되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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