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체제는 생명 다했다"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2008. 6. 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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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별명도 만만치 않게 많다. 그 중에서 류 실장의 '실상'을 드러내주는 별명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군기반장과 류 주사, 그리고 빨간펜.

군기반장의 면모를 보여주는 실례. 지난 4월 이 대통령이 방미 중일 때다. 직원들은 새벽잠을 자다 말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아침 6시30분까지 출근하라'는 비상소집령이었다. 발신자는 류 실장이었다. 대통령 부재 때 전 직원이 2시간 내에 청와대로 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고 한다.

류 주사. 시시콜콜한 걸 따지고 챙긴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전화 잘 받고, 술 자제하고, 언론에 대한 입단속 등.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비아냥이 깔려 있다. 류 실장의 한 측근 의원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처음으로 열린 확대 비서관 회의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직접 전화를 걸겠다"라며 수석들을 제치고 비서관들의 근무기강을 다잡았다. 대통령이 잘한 일은 전봇대 뽑고, 일산경찰서 방문한 것 딱 두 가지라는 세간의 힐난도 이를 방증한다.

빨간펜이라는 별명은 류 실장이 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도맡아 작성한 데서 비롯됐다. 류 실장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연설부터 대통령 취임사까지 연설문을 작성해왔다. 한때 류우익 실장의 연설문 작성 실력은 '이 대통령의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라는 평가가 뒷받침했지만 지금은 "연설문 고치는 데만 열을 낸다"라는 무능으로 치부된다.

원래 대통령실장의 '위상'은 이렇게 쫀쫀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조직은 기존의 비서실장-정책실장-안보실장-경호실장 '4실' 체제를 '1실' 체제로 개편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상을 대폭 높여놓았다. 직함도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대통령실장으로 바뀌었다. 총리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청와대가 사실상 국정의 컨트롤 타워가 됐다. 조직의 군살을 빼고 일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실용' 정부 마인드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실용은 없고 실세만 살아남는, 일은 안 돌아가고 암투가 횡행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그 중심에 류우익 실장이 있다.

우선 인사 문제다. 류 실장은 박영준 기획조정 비서관의 검증 실무를 토대로 내각과 청와대 인사를 주도했다. 결과는 만신창이였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으로 대표되는 도덕성의 실추에 이어 능력 또한 아마추어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S(서울시)라인' 내각이라는 한마디가 이를 대변한다. 청와대 비서진의 재산이 공개되면서는 '돈 수석'이라는 신조어까지 가세했다. 전문성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 시스템 없이, 몇몇 실세가 좌우한 밀실 인사의 결과다.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드는 위인설관 문제까지 드러났다. 홍보 기능과 방송정책이 엉뚱하게 국정기획수석실(곽승준)에 배당되고, 청와대 내부 감찰 기능이 민정수석에서 기획조정비서관실(박영준)로 넘어갔다.

다음은 정무 기능의 실종이다. 청와대 정무 라인은 류우익 실장 밑으로 박재완 정무수석,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장다사로 정무1비서관, 김두우 정무2비서관이 포진해 있다. 류우익·박재완은 교수 출신이고, 박영준과 장다사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 참모 출신이다. 김두우는 중앙일보 정치부장 출신. 내각과 국회, 대통령 사이에서 조정 기능을 해야 할 정무 라인이 무경험자거나 특정 실세의 영향권 아래 있는 인사로 채워졌다. 단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이명박-손학규 회동이 아무런 합의 없이 형식적 만남에 그친 데는 정무 라인의 사전조율 기능이 없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여당에서는 줄기차게 정무 라인을 교체하라고 주장했지만 청와대 측에서는 자기 파 사람을 심으려는 권력 투쟁으로 인식, 쇄신 주장을 일축해왔다.

물론 이같은 청와대 난맥상의 최종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사무관이니 비서실장이 주사급 아닌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대통령의 가장 큰 구실은 비전을 제시하고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실패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할 '제1참모' 류우익 실장의 책임론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함성득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와 행정 경험이 부족한데 류 실장은 그걸 보완해주지 못했다. 사실상 지금의 청와대 체제는 끝났다"라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류우익 실장이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97년 당시 이명박 의원이 대운하 구상을 할 때다. 이 대통령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던 류 실장에게 자문했고 이후 두 사람은 '개발 정책' 코드를 맞춰왔다. 지난 대선 때 "물길이 통하면 민심이 통한다"라는 대운하 홍보 문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쇠고기 촛불은 대운하로 옮아붙고 있다.

박형숙 기자 /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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