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내용 알아들을 수 없음"

입력 2008. 6. 5. 19:21 수정 2008. 6. 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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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29 킹스멘의 <루이 루이>(1963)

1963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다. 외설적인 노래 하나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진정이 빗발치자 에드가 후버 국장이 수사관을 파견한 것이다. 연방통신위원회도 가세했다. 인디애나 주지사 매튜 웰시는 "그 포르노 같은 것"을 금지시키라며 방송국에 압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문제의 노래는 무명 로큰롤 밴드 킹스멘의 <루이 루이>였다. 수사는 31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로 연방수사국이 제출한 보고서는 허탈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가사 내용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음." 수사가 종결되고 역사가 시작되었다. 구설은 전설이 되었다.

<루이 루이>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노래로 기록되고 있다. 온전히 이 노래만을 위해 개설된 누리집(루이루이닷넷)에 따르면 현재까지 다른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을 합치면 발표된 곡이 1500곡이 넘는다고 한다. 주류의 슈퍼스타부터 무명의 인디 밴드까지, 헤비메탈에서 테크노까지, 그 연주자와 스타일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비평가 데이브 마시는 이 노래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만 책 한 권을 통째로 바쳤고, 1983년 캘리포니아의 한 라디오 방송은 각기 다른 가수가 부른 <루이 루이>를 63시간 연속으로 방송하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킹스멘 스캔들'의 여파였다.

킹스멘을 통해 유명해지긴 했지만 <루이 루이>는 본래 그들의 노래가 아니다. 당시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북서부 지역에서 이 노래는 아마추어 밴드라면 누구나 한번씩 연주하는 통과의례적 넘버였다. 파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과정도 복잡하다. 원작은 흑인 리듬 앤 블루스 뮤지션 리처드 베리가 1957년 만들어 발표한 것이었지만 곧 잊혀졌고, 5년 뒤 시애틀의 로킹 로빈 로버츠가 리메이크해 지역에서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많은 무명 밴드들이 <루이 루이>를 레코딩하기 시작했는데, 킹스멘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킹스멘 버전의 <루이 루이>를 유명하게 만든 요인이 그것의 조악한 수준에 있었다는 점이다. 지역방송 디제이 켄 체이스의 제의로 단돈 35달러를 받고 녹음한 킹스멘의 <루이 루이>는 애초 발매할 만한 게 아니었다. 엇나간 박자와 불평 섞인 욕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구설의 원인이 된, 가사를 외우지 못한 보컬리스트 잭 엘리의 얼버무림이 고스란히 담겼다. 결국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가사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되었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면서 갖가지 외설적인 문장들이 진짜 노랫말인양 퍼져나갔던 것이다. 기성세대의 비난이 쏟아졌고 마침내 연방수사국까지 움직였다.

 킹스멘의 <루이 루이>를 둘러싼 해프닝은 로큰롤에 대한 주류의 매카시즘적 시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편견에 눈먼 기성세대가 사태를 우스꽝스럽게 부풀려놓았던 것이다. 생존권을 외치며 촛불을 든 청소년들에게 배후를 대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이 나라의 정권을 향해 들려주고 싶은 우화 같은 스캔들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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