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겨냥 '걸 그룹'의 전형

2008. 5. 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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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을 바꾼 노래 (26) 시렐스의 <윌 유 러브 미 투모로>(1960년)

1950년대 말 로큰롤 1세대의 극적인 퇴장 이후, 미국 대중음악계는 보수성을 강화했다. 로큰롤을 사회문제로 치부했던 지배적 여론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거대한 규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청소년 소비시장의 무궁한 가능성이었다. 레코드업계는 로큰롤의 리듬과 선율을 차용하되 고전적인 창법과 얌전한 자태로 그것을 윤색함으로써 시대와 타협했다. '틴 아이돌'과 '걸 그룹'이 그 대표적 산물이었다.

틴 아이돌은 이른바 '비디오형 가수'의 원조 격이다. 출중한 외모를 앞세운 '오빠'들이 필라델피아에 거점을 둔 당대 최고의 인기 티브이쇼 '아메리칸 밴드스탠드'를 통해 시장을 지배했다. 음악적 새로움과는 무관한 슈도로큰롤이 그들의 노래였다. 반면, 걸 그룹은 전통적 음악 중심지 뉴욕의 노하우가 만들어낸 일련의 여성중창단을 가리킨다. 최고 실력의 작곡가들과 프로듀서들이 포디즘적으로 분화된 작업을 통해 세련된 팝 음악을 세공해냈다. 포스트-로큰롤의 두 양상은 가수의 성성과 음악의 속성에서 드러나는 그런 극명한 차이만큼이나 상반된 평가를 받았는데, "이 시기 최고의 레코드들은 뉴욕에서 나왔고, 최악의 것들은 필라델피아로부터 왔다"고 단정한 비평가 그레그 쇼의 정의는 여전히 미국 대중음악사를 지배하는 관점이다.

네 명의 소녀로 구성된 시렐스는 바로 그 걸 그룹의 전형이었다. 가창의 기교마저 불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목소리와 하모니로 사춘기의 감성을 노래했던 그들은, 흑인 여성중창단으로 사상 처음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윌 유 러브 미 투모로>를 통해 이후 등장한 모든 걸 그룹의 모범이 되었다. <윌 유…>는 "내일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라고 묻는 제목 그대로,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의 불안감이라는 시대 불문의 소재를 그들 눈높이에 맞춘 감정이입으로 풀어냄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비평가 데이브 마시는 "뛰어난 가수라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어 할 아름다운 선율 때문이 아니라, 소녀의 성적 정체성의 특정한 단계를 규정한 가사 덕분"에 이 노래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썼다.

<윌 유…>의 절절하게 실감나는 노랫말은 당대 최고의 송라이팅 콤비였던 원작자 캐럴 킹과 제리 고핀의 자기고백을 통해 극대화한 것이었다. 특히 연인 사이기도 했던 고핀과의 관계에서 혼전임신을 경험한 킹의 번민은 이 노래에 사실성을 불어넣은 요인이었다. 당시 킹 자신이 십대 후반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래를 부른 시렐스와 노래를 들은 청소년들 사이를 연결한 킹의 매듭은 또래집단의 동질감으로 묶인 것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포 룸>에 참여하여 널리 알려진 여성 감독 앨리슨 앤더스는 (느슨하나마) 캐럴 킹과 시렐스의 얘기를 바탕으로 영화 <그레이스 오브 마이 하트>(1996)를 만들었다. "걸 그룹의 음악은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커다란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는 연출의 변을 통해 그는 노래와 세상을 조응하게 한 통로가 진정성에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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