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 특파원의 今日中國] 中노동자들 "文革때보다 더 힘들어"

2008. 5. 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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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 물가도 급등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

고도성장 부작용 속출

〔베이징=최헌규 특파원〕 "국유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1년 전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뒤 지금은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요." 1일 베이징 시내 시청(西城)구의 한 서민 아파트단지 놀이터에서 만난 주부 저우(周) 씨는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우 씨는 노동절을 맞아 떨어져 지내는 아들 내외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며 동네시장에서 장을 봐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가 이날 쇼핑에 쓴 돈은 60위안(약 8400원) 정도이며 손에 쥔 비닐 봉지 안에는 계란 한 줄과 돼지고기 한 근, 시금치 한 묶음 등이 들어 있었다.

중국이 '소창자(小長假)'라고 부르는 짧은 노동절 휴가에 들어갔지만 사람들에게선 휴가와 절일의 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값 및 식료품 가격 급등에다 고용 불안이 겹쳤기 때문인지 만나는 노동자들마다 얼굴 표정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저우 씨와의 얘기 도중 곁에 있던 50대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이 짠(戰)씨인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문화대혁명 때인 10대 시절 쓰촨(四川)성 농촌에 쫓겨가 6년간 머물렀다는 짠씨는 "당시엔 물가 걱정도 고용 불안도 없었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12시간 이상 마소처럼 일해 한 달에 1300위안가량 벌지요. 담배와 외식비 등을 빼면 한 달에 600위안 정도 모읍니다." 짠씨는 매월 500~600위안을 랴오닝(遙寧)성 진저우(錦州) 고향 집으로 보내 노모와 아들을 부양한다고 말했다.

이들 농민공 노동자들은 그래도 농촌의 농민 노동자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네이멍구(內蒙古)의 농촌에서 만난 위(于) 노인(65세)은 5무(畝.1무는 약 200평)의 밭에 감자농사를 하는데 1년 소득이 2500위안 정도라고 밝혔다. 위 노인을 비롯해 60여가구의 마을 사람들은 거의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관영방송인 CCTV는 얼마 전 곡물값이 올라도 농민들의 소득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이 방송은 헤이룽장(黑龍江)성 한 농가의 사연을 들어 1무당 900근(한근 500g)의 벼를 수확, 한 근에 7마오씩 판매한 뒤 농자재와 비료대로 500위안을 치르고 나면 수중에 한 푼도 남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관영 매체는 노동절을 맞아 연일 노동자 찬양의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일 닝보(寧波)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무하는 행사를 가졌다. 정부가 정성을 다해 노동자 감싸안기에 나서고 있지만 사람들 표정엔 여전히 시름의 골이 깊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 한편에선 대국 궐기의 함성이 요란하지만 노동자 계층의 생활은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다. 당 문건에 명시된 것처럼 공산당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농민을 영도하는 선봉집단'이 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은 것 같다. (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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