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민 노무현 '노간지'로 뜨다

2008. 3.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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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봉하마을서의 소탈한 일상 화제… 노짱 홈페이지에 네티즌 방문 줄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심상찮다. 재임 중 온갖 욕을 얻어 먹으며 '최악의 지지율'로 고통받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오프라인 대통령은 이명박, 온라인 대통령은 노무현"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10대와 20대 초반 사이에서는 '노간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간지'라는 단어는 청소년과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는 속어로 '폼이 난다' '멋있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간지난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간지'라는 속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인 '노'를 더해 '노간지'라는 신조어가 생성된 것이다.

고향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 받아

이는 퇴임 후 '시민 노무현'으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증거다. 그가 호감을 사고 있는 이유 중엔 '퇴임 후 낙향'이란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멀쩡히 고향을 두고도 서울에 머물면서 현실 정치에 이런저런 훈수를 뒀던 여러 전직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시민 노무현'은 발가락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소탈한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봉하마을 동네 슈퍼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내오라고 한 후 담배 한 개비를 문 동네 어른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에도 뜨거운 관심이 모였다. 경호상의 문제로 동네 출입을 아예 봉쇄당하고 있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 재임 중 노 대통령이 욕 먹는 이유를 잘 몰랐고, 지금도 그렇다. 경제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기업인들은 뭐했나. 솔직하게 발언하고 이상한 권위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노통이 나는 좋다. 다음 대통령들, 노무현만큼만 해라."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새 대통령 취임 직후 고향에 내려가서도 특유의 솔직함과 애향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고향에 도착해서 이렇게 연설했다.

"제가 지난 5년 동안 대통령 잘했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잘못했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좀 잘했으면 어떻고 못했으면 어떻습니까.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했고요. 뭐 이쁘게 보면 이쁜 거지요. 설사 좀 시원치 않아도 이쁘게 봐 주십시오."

"대통령 5년 동안 가장 보람된 것이 뭐냐고 다시 묻는다면 임기 마치고 고향에 가서 고향 사람들하고, 그리고 나보고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모셔놓고 귀향 보고 하는 게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이렇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뭘까. 네티즌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시민이라는 점에 우선 주목하고 있다. 아이디 '부산의 별'이라는 네티즌은 "대통령이 잘하든 못하든 늘 한 인간과 함께 국정에 대해 생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으면서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국민과 직접 대화하려고 했던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게 됐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모두 4개의 글을 올렸다. 가장 최근에 올린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실려 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엄청난 수의 글을 보며 감동하고, 퇴임 후에도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실은 글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과연 노짱이 이 글을 읽을까?' 이런 글도 보았습니다. 물론 봅니다. 그러나 일일이 다 볼 수가 없습니다. 글이 너무 많이 올라오니까요. 띄엄띄엄 읽어도 많이 감동한답니다. 글을 읽으면서 과분한 격려에 황송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살려면 앞으로도 참 힘들게 살아야겠구나, 생각하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네티즌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중에는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의 인기가 어떤 정치심리학적 이유로 형성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 네티즌은 노 대통령 재임 시 그를 엄청나게 욕하고 비방했던 부모가 있다. 얼마 전 그의 부친은 그에게 "봉하마을에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딸은 아버지의 제안이 놀랍기만 하다. 그는 그 과정을 이렇게 적었다.

모처럼 함께 밥 먹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너 다음 달에 시간 어떠냐. 봉하마을에 같이 갈래?" 밥 먹다가 체할 듯 놀라서 친구들이랑 이미 다녀왔다는 말은 못하고 "헉! 아버지 맨날 노통 욕하기 바쁘더만 가서 머 하려고?" 했더니 아버지 말씀이 "내가 언제 노무현 욕하더냐? 원래 우에 있으면 욕도 먹으면서 열심히 하는 거지. 아버지가 쓸데없이 사람 욕하더냐?" 하면서 외려 제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 ㅋㅋ… 어머니도 덩달아서 "딸년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꼬락서니가… 언제 아버지가 노무현이 욕하더냐? 또 욕하면 좀 어때서? 난 노무현이가 욕먹으면서도 제일 마음에 든다."

봉하마을 하루 수천 명 관광객 몰려

봉하마을엔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일단 마을을 방문하면 그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노무현 팬을 봉하마을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노무현 정권 심판론' 역시 적어도 이번 총선에서만큼은 먹힐 것 같지 않다. 한국인의 정서는 퇴임한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며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는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보수언론마저도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이 '뜨는 현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보수주의 논객 복거일씨는 "지난 10년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된 전체주의 시대였고 지난 대선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싸움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남북한 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을 쳐도 된다"고 한 노 전 대통령의 '공격적 민족주의'와 헌법의 수호를 핵심적 책무로 지닌 대통령이 '그 놈의 헌법'이라고 헌법을 저주한 데서 법의 지배를 부정하는 민족사회주의의 특질이 잘 드러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국민과의 소통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지만 그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풀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 국민과 직접 소통하면 재임 당시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이 지나쳤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게 이 인사의 희망 섞인 전망이다. 요컨대 그에 대한 진정한 재평가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유일한 경남권 현역의원인 '김해 을'의 최철국 의원은 요즘 노 전 대통령의 음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면서 "김해 을에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넘어 노무현 마케팅이 통하는 지역"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민주당과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친노 인사는 20명에 육박한다. 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해 원내에 다수 진출할 경우 적어도 시민사회세력 안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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