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래희망은 '명랑할멈'"
박어진 `나이 먹는 즐거움' 출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발로 뛰는 일벌의 막중한 소임과 영광은 후배들에게 돌려야 할 때"를 알고 "박수칠 때 떠나"왔지만, 28년의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하고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퇴직 후 금단현상"을 겪었다.
오탈자를 찾아가며 아침 신문을 읽고, 대낮에 하는 영화와 음악회도 보고, 산에도 오르고, 친구들 불러 밥도 먹으며….
쉰셋의 나이에 재취업에 성공한 지금은 달리는 컴퓨터 사용 능력에 스트레스도 받지만 첫 월급으로 친정엄마와 시엄마께 꽃무늬 블라우스를 사드릴 생각에 새로운 시작이 짜릿하기만 하다.
1978년 한국일보의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시작해 주한 미국대사관 선임 전문위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퇴직하면서 28년의 월급쟁이 생활을 마감한 자유기고가 박어진 씨가 여성의 일과 중년의 삶, 가족 이야기를 담은 '나이 먹는 즐거움'(한겨레출판)을 펴냈다.
'박어진의 좌충우돌 갱년기 보고서'라는 명랑한 부제가 붙었지만 경쾌한 입담 속에는 일하는 여성의 치열한 고민과 열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저자는 완경(폐경)과 함께 우울증과 불면증, 홧병은 물론 당뇨와 온갖 질환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갱년기 여성에게 희생 대신 효과 만점으로 증명된 "이기적으로 조금은 타락할 것"을 처방했다.
점심시간 백화점 식당가를 점령한 주부들에게 눈살 찌푸리는 직장인들에게도 "집이라는 닫힌 공간을 직장으로 가진 주부들이 모여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전업 주부의 직업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사주풀이에서조차 '억세고 드센' 여자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풀이가 바뀌고, '설쳐대고 일을 마구 벌이는 기질'은 비즈니스 능력과 직업운으로 연결되는 딸들의 시대, 여성의 시대를 축복했다.
또 "김치찌개를 만들 때 다시마와 멸치, 마른 새우로 끓인 육수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늦깎이 주부인 저자는 밥상 위에 오른 나물을 경건하게 먹으며 전업주부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감격하는 능력이 뛰어나 일상은 감격시대고, 파티할 명분이 넘쳐 평생 파티하느라 바빠 조증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 저자의 장래희망은 '명랑할멈'이다.
저자에게 기자 시절은 "선후배들과 서로 모자란 곳을 채워주고 약점을 지적하고 때론 다투면서 어느새 나란히 키가 자랐"던 때이고, 학연.지연이 무의미한 대사관에서의 근무는 "대한민국 여성의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해 준" 감사한 시절이다.
일하는 후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굴욕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냉정하게 충고하고, 두 자녀에게 남기는 유서에는 "너희들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배워서 남줘라"라고 적었다.
280쪽. 1만원.
eoyy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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