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탈출? 정체성 유지?.. 고민되네

2007. 11. 3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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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모종혁 기자]

고기반찬이 하나도 없는 채소 위주의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삐아사 묘족 여인들.

ⓒ 모종혁

뤄샹(洛香) 5일장에서 한 중년 남성이 집에서 쓰던 중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나와 매매를 하고 있다.

ⓒ 모종혁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은 아직 한국인에게 낯선 땅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즐겨 마신 명주 마오타이(茅台)의 고장으로 알려진 게 고작.

중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40세의 젊은 나이에 구이저우성 당서기로 임명되어 국가지도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 경제를 눈여겨본 사람은 25개 성시 가운데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가난한 지역으로 구이저우를 떠올릴 것이다.

구이저우는 중국 서남부에 위치하여,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17만4000여㎢ 면적에 87%가 험한 산지다. 2005년 현재 묘족(苗族)·동족(?族)·포의족(布依族)·수족(水族) 등 소수민족 인구가 전체 인구 3904만 명 가운데 37.8%인 1475만 명을 차지한다. 1000여 개의 폭포와 수천 개의 동굴, 수려하고 산수화 같은 산과 수림, 각양각색의 문화풍속을 지닌 17개의 소수민족 등은 구이저우가 자랑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구이저우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다양한 소수민족 문화자원을 지녔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연 8% 이상의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최근 2~3년에는 10% 성장률로 경기과열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부지역은 여전히 낙후의 그늘 아래 놓여있다. 중국 서부는 55개의 소수민족 대부분이 몰려 사는 곳이다. 즉,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동서부 간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0년부터 서부대개발을 추진했다. 서부대개발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에 의해 발전한 동부연해지역의 부와 성과를 서부에 돌려 대대적인 투자와 개발을 촉진코자 한 정책이다.

2001~2005년 10차 경제사회 5개년 규획(10·5) 동안 중국정부는 서부에서 60건의 대규모 투자 사업을 진행했고, 총 투자액 8500억 위안(한화 약 100조원)을 쏟아 부었다. 이 덕분에 소수민족의 소득수준은 수치상 점차 증가하고 있다.

탕안 동족마을의 한 가게 앞에서 쉬고 있는 주민들. 중국 농촌에선 낮은 소득과 낙후한 생활조건으로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 모종혁

주말을 맞아 장터에 나와 술도가를 찾아 술을 사는 사람들. 레이공산 자락의 한 묘족 마을 풍경이다.

ⓒ 모종혁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땅, 구이저우

작년 9월 중국 국가민족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5년 소수민족지역의 주민 1인당 연평균 수입은 도시 8678위안(약 104만원), 농촌 2412위안(약 29만원)으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도시 3270위안, 농촌 781위안이던 2000년 당시 수입의 2.7배, 3.1배로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동부연해지역의 주민 소득 증가는 그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올해 2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중국 주민 소득·분배 연차보고'는 "2005년 동부·중부·서부 지역의 도시주민 1인당 연평균 가처분소득이 각각 1만3375위안, 8809위안, 8783위안으로 동부지역이 중부·서부보다 1.5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2007년 주요 도시의 임금·물가·주거비·교통비 등에 대한 조사결과는 지역 간의 소득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부연해지역의 대표도시 상하이의 샐러리맨 평균 월급은 5350위안(64만원)으로 중국 도시 중 가장 많았지만, 티베트(西藏)자치구 수도인 라싸의 경우 900위안(11만원)에 불과했다.

선전(深?·5280위안), 원저우(溫州·5020위안), 베이징(北京·5000위안) 등 동부연해도시는 4000~5000위안대를 돌파했지만 란저우(蘭州·1500위안), 인촨(銀川·1100위안), 시닝(西寧·1000위안) 등 서부도시는 동부의 1/4·1/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이저우 수도인 구이양(貴陽)도 1600위안(약 19만원)으로 최하등급을 차지했다.

구이저우엔 본래 철·석탄·구리·수은·인광석·보크사이트 등 다양한 종류의 광물이 풍부하다. 석탄 매장량은 양쯔강 이남지역에서 쓰촨(四川)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구리와 수은 생산량도 중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1960년대 말부터 추진한 3선 건설 정책으로 구이양·준이(尊義)·안순(安順)·두윈(都勻) 등지에서는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화학·철강·기계·방직·전기·고무공업이 발달했다. 구이저우성을 관통하는 냐오강(鳥江)은 양쯔강 상류 우측의 최대 지류로, 낙차가 1980m에 달하여 수력자원도 풍부하다. 광물자원·에너지·동식물 등이 풍부하지만 구이저우는 더딘 개발로 티베트·칭하이(靑海)와 더불어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구이저우의 개발을 가로막는 원인은 낙후한 교통 인프라이다. 구이저우에 큰 산맥은 없지만, 해발 1000~2000m에 달하는 윈구이(雲貴)고원·다러우(大婁)산맥·먀오링(苗嶺)산맥 등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구이저우 산간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된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지표 일부가 깎여 기복이 무척 심하다.

험준한 산악지형이 펼쳐진 구이저우에서 도로는 중요한 물류 인프라지만, 고속도로는 극히 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로가 대부분이다. 중국 내 타 지역에서 주요 운송수단이 되는 철도는 구이양을 중심으로 1만4000㎞로,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첸동난자치주의 주도인 카이리(凱里) 기차역. 첸동난자치주 교통 인프라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열악하다.

ⓒ 모종혁

방목한 소를 이끌고 사냥총을 든 채 귀가하는 잔리촌의 한 노인.

ⓒ 모종혁

안분지족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소득격차에 불만 급증

첸동난묘족동족(黔東南苗族?族)자치주는 구이저우의 낙후성과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6개 시현(市縣)이 있는 첸동난자치주는 면적 3만337㎢로 결코 작지 않다. 첸동난자치주에는 441만7천여 명의 주민이 사는데, 그 중 81.8%는 현재 묘족·동족·수족·요족(瑤族) 등 소수민족이다.

땅은 넓지만 '열에 아홉은 산이고 나머지는 물과 논밭이다'라고 할 정도로 첸동난자치주의 경지면적은 협소하다. 다행히 첸동난자치주는 북위 25∼29℃에 걸친 아열대지방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찬 기류를 산지들이 막아주어 따뜻하다.

지형적인 제약 때문에 첸동난자치주에서는 계단식 농사가 발달했다. 풍부한 강수량과 습기 높고 구름 많은 기후는 1년 3모작까지 가능케 했다. 산등성이를 개간해 만든 다랑논밭에서 거둔 쌀·보리·옥수수·감자 등 곡식과 산지에서 키운 가축에서 난 육류·피혁·양털 등은 넉넉하진 않지만 살기 충분한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갖추게 했다.

이렇듯 첸동난자치주의 소수민족에겐 지난 수천여 년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서 살 수 있는 터전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사반세기 동안 중국경제가 이룬 눈부신 성과는 첸동난자치주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동부연해지역과 비교해 엄청난 생활수준의 격차가 대중매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전해지면서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

2005년 현재 첸동난자치주의 주민 1인당 연평균 수입은 도시 7707위안(약 93만원), 농촌 1728위안(약 21만원)에 불과하다. 비록 1986년 230만 명이던 빈곤인구가 19년 동안 37만 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중국에서 가장 낮은 소득 수준이다.

전체 자치주 총생산액도 145.4억 위안(약 1조7000억원), 공업생산액은 93.7억 위안(약 1조1170억원)으로 주 단위로는 중국 최하 순위다. 첸동난자치주 정부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매장량을 지닌 중정석을 비롯한 47종의 광물과 산림임업을 바탕으로 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단시일 내에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첸동난자치주의 발전이 더딘 원인은 구이저우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적은 자본과 낙후한 인프라 시설이다. 특히 열악한 교통 인프라는 첸동난자치주 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도 첸동난자치주의 도로는 포장상태가 양호한 국도가 극히 적고 폭은 좁은데다 노면이 고르지 못하다. 하천은 많지만 유속이 빠르고 수력발전소가 곳곳에 산재하여 선박 수송은 이뤄지지 못한다. 자치주 내에는 민용 공항이 하나도 없고 철로도 232.5㎞에 불과하다.

자오싱(肇興) 동족마을에 있는 고루와 풍우교. 동족이 사는 마을 중앙에는 반드시 고루가 있기 마련이다.

ⓒ 모종혁

랑더(郞德) 묘족마을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루셩(蘆笙, 대나무로 만든 묘족 전통피리)을 부는 노인들. 첸동난자치주의 적지 않은 소수민족 마을 주민들은 민속공연 연기자처럼 돼버렸다.

ⓒ 모종혁

마지막 선택인 관광개발이 낳는 또 다른 부작용

어려운 현실에서 첸동난자치주는 최근 관광산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다채롭고 볼거리 풍부한 소수민족과 수려하면서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내세워 '관광 입국'을 만들겠다는 것.

리원밍(李文明) 첸동난자치주 민족종교위원회 주임은 "아름다운 산수, 다양한 명승고적, 원생태의 문화풍속을 그대로 보존한 소수민족 등은 첸동난자치주만의 매력"이라며 "관광산업 개발은 내·외국인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서비스산업도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첸동난자치주에는 레이공산(雷公山)국립공원, 유에량산(月亮山) 등 울창한 원시산림과 2900여개의 크고 작은 하류가 있다. 물의 도시 전위안(鎭遠), 명대 고성의 완벽한 보존지 룽리(隆里) 등 역사유적 또한 널려 있다. 무엇보다 옛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보존한 소수민족의 삶과 풍습은 첸동난자치주 최고의 자랑거리다.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지금 첸동난자치주 소수민족 거주지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호텔·상가·유흥업소 등이 잇따라 들어서고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소수민족은 농사일보다 민속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적지 않은 소수민족 주민들은 아예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거나 외지에 나가 민공이 되어 일한다.

5월 17일 중국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주간지 <남방주말>(南方週末)은 '공연을 강요당하는 삐아사(?沙)'라는 르포기사에서 소수민족 거주지가 관광객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실을 고발했다.

<남방주말>은 "삐아사에 몰려온 관광객은 주민과 아이들에게 '웃어라',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라' 지시하면서 사진 모델이 되기를 강요한다"면서 "현지 주민도 관광객과 흥정하면서 노골적으로 모델료를 요구한다"고 보도했다. <남방주말>은 "일부 주민은 생계를 내팽개치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민속공연에만 매달린다"면서 "현지 공연에서 벌어들인 수익 배분과 외지에서 행하는 공연에 누가 참가하느냐 문제로 주민 간의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삐아사에서 만난 군잉춘(38)은 "마을 입구 촌락에 사는 주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면서 "관광객에게 구걸하며 사는 연기자들"이라며 일부 주민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더욱 큰 문제는 2000년 이래 외지의 공장이나 공사장, 식당에 나가 고되게 일하며 돈벌이를 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것"이라며 "삐아사 내에서조차 심각한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량줘홍(梁倬宏·36) 잔리(占里)초등학교 교장도 "최근 들어 잔리촌의 1남1녀 자녀 낳기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관광객들이 종종 들어온다"면서 "일부 관광객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나 현지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먀오녠(苗年) 민속공연 행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장(西江) 묘족마을 어린이들.

ⓒ 모종혁

도시로 일하러 나가기 위해 짐을 둘러메고 카이리로 가는 버스로 향하는 산골 남자들.

ⓒ 모종혁

올바른 관광자원 개발이냐, 상업화로 인한 공동체 붕괴냐

TV를 통해 전달되는 도시문명과 관광객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환상도 문젯거리다. <남방주말>은 "삐아사 주민들에게 가장 큰 오락거리는 TV시청"이라며 "현지 어린이들에게 리위춘(李宇春) 등 가수는 최대 우상이고 최신 유행가는 줄줄 꿰고 있어야 같은 또래와 얘기가 통한다"고 보도했다.

탕안(堂安)에서 만난 한 동족(?族) 어린이(12·여)는 "멋진 옷을 입고 첨단 전자기기를 가지고 다니는 관광객을 보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4학년 때 가출하여 광둥(廣東)성에 가 식당에서 일하다 아버지에게 끌려온 경험이 있다"면서 "내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시 광둥에 가서 돈을 벌어 원하는 물건을 모두 살 것"이라고 밝혔다.

섹스산업도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첸동난자치주의 교통요지인 롱장(榕江)현청에는 20~30m 간격에 하나 꼴로 미용실로 위장한 매매춘업소가 있다. 한 미용실 사장 우아무개씨(여)는 "롱장에 묶는 관광객, 오가는 트럭운전사 등 샤오제(小姐, 매춘여성)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면서 "샤오제의 대부분은 현지 소수민족"이라고 말했다.

총장(從江)현 대부분 호텔에서는 밤늦게까지 걸려오는 전화로 잠을 설치기 일쑤다. 낯선 여성은 "샤오제를 원하느냐"며 "한족부터 소수민족까지, 10대 후반의 어린 샤오제가 준비되어 있다"고 투숙객을 유혹했다.

지난 7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개발과 투자가 이뤄지면서 소수민족 고유문화가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무분별한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소수민족의 민속 문화가 변질되거나 천편일률적인 공연만이 난무한다"면서 "일부 지역은 젊은이들이 외지로 떠나면서 80여 개의 소수민족 또는 지방 사투리 가운데 이미 10여 개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원형 그대로의 소수민족 생활방식과 문화풍습이 잘 보존된 첸동난자치주.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관광자원으로 개발할지, 무분별한 상업화로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민족공동체가 무너질지,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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