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지2010> 연극 '백무동에서'의 고수희

2007. 11. 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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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클(큰 일)났네!"

극단 골목길의 신작 연극 '백무동에서'(박근형 작.연출)에 대해 우선 이야기해 보자며 인터뷰 말문을 튼 데 대한 고수희의 반응이다. 웃는 얼굴 속에 난감해하는 표정이 살짝 스쳐 지나간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분장실을 찾은 기자에게 그는 "(연극) 어떻게 보셨어요?"라고 먼저 물었다.

'백무동에서'는 이 시대의 광기(狂氣)를 18명의 배역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병원장 부부가 중심인물 같지만 실제로는 등장인물 모두가 나름의 광기를 뿜어낸다.

고수희가 맡은 역은 무면허 산부인과 병원장(김영필 분) 부인인 사모님. 자상함마저 느껴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늘 말을 하지만 병원장이나 간호사에게 무면허시술을 서슴없이 사주하는 그런 냉혈 사모님이다.

지난 2년간 대학로에서 열풍을 일으킨 '경숙이, 경숙아버지'(박근형 작.연출)에서 경숙 엄마 역을 맡아 올초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탄 고수희. 그는 '백무동에서'에 대해서는 "박근형 연출님과 함께 한 연극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인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사실 이 작품은 설정 자체가 엉뚱하다. 경상남도 함양마을(극중의 가상 공간)의 상림숲에 천연기념물 쌍둥부리 버들제비가 나타나 알을 까기 시작하면서 이 마을에서는 할아버지가 임신을 하는 등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아기를 갖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커튼콜 때 관객들이 시원하게 박수를 치지 않거나 뭔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을 때 '이 거, 내가 뭔가 잘못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말해서 두렵구요."

'경숙이, 경숙 아버지'나 다른 작품을 했을 때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개념이 딱 잡혔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연출님에게 혼 날 일"이라면서도 고수희는 이번 공연이 끝나는 12월2일까지 자신이 사모님 역을 얼마나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는지 의문이라고 답답해한다.

"제가 그간 맡은 역들이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요. 조금 세게 하다 보면 저건 마녀다, 좀 서정적으로 하다 보면 저건 경숙이 엄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더구나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경숙이 엄마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고수희는 이번 공연만 마치면 한동안 경숙이 엄마 이미지에서 떠나서 배우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백무동에서'가 끝나면 두 달 정도 쉬었다가 도쿄에 가요. '야키니쿠 드래건'이라는 작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거든요.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으로 일본에 건너가 고깃집을 하는 사람의 이야긴데 4월에 일본 공연을 마치면 5월에는 여기 예술의전당에서 이 작품을 다시 하죠. 한일 공동제작작품이에요."

내년 가을에도 다시 극단 골목길과 일본 아오모리의 히로사키극단이 함께 만든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

두 개 한일 공동제작작품 공연 중간인 내년 8~10월 기간에는 '연극열전2' 무대 작품 중 하나인 '잘자요, 엄마'(마샤 노먼 작)에 나문희, 윤소정과 함께 출연하게 된다.

연극출연, 영화촬영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요즘 카메라에 바짝 취미를 붙이고 있다. 특히 폴라로이드 사진이 매력이 있어 구닥다리 폴라로이드카메라를 사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핸드백에 있는 클래식 폴라로이드카메라 두 대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그가 가진 카메라는 폴라로이드카메라 넉 대와 디카 넉 대 등 모두 여덟 대. 며칠 전에 인터넷을 통해 구식 폴라로이드카메라를 하나 샀는데 필름이 인화가 안되는 바람에 너무 분해 밤잠을 전혀 못 자기도 했다고 한다.

고수희는 앞으로 멜로극의 주인공을 해 보고 싶단다. "못 생긴 사람들도, 키 작은 사람들도, 뚱뚱한 사람들도 사랑을 하잖아요. 아직 어리구 여배우라서 그런지 너무너무 멜로가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역을 해 보고 싶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 걸작이다.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어를 제일 하고 싶어요. 그런데 주위의 모든 분들이 '그 걸 네가 하면 완전한 실험극이 될 거다' 그래요. 그런 고정관념을 못 깨더라구요. 우리 극단에서 워크숍으로 '햄릿'을 했어요. 그 때 정말 오필리어를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하며 그는 웃는다.

그가 앞으로 어떤 역을 하게 되건 배우로서 그에게 최초의 큰 상을 안겨준 '경숙, 경숙 아버지'가 마음 속에서 떠날 수는 없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지난달 경남 거창에서의 이 작품 마지막 공연날 느낌이 이렇게 적혀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게 마련이건만...오늘이 정말 끝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장마철 그 극장의 눅눅함, 내 피를 빨아 먹던 베라먹을 모기들, ...그렇게 2년간의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대장정이 끝이 나고 있다. 애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가슴은 왜 저려 오는건지...에이...빌어먹을...경숙이 아부지..."

kangfa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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