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노래] 컨트리 음악, '백인의 블루스'로 등극하다

2007. 10. 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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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교통수단의 발달이 초창기 미국 대중음악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소통 수단이 음악의 유통 방식을 변화시킨 것에 비할 만큼 지대했다. 레코드와 라디오의 발명 이전에는 교통수단이 곧 통신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악보에 채록된 적도 없는 국지적 민속음악이 지역 경계선을 넘어서는 길은 사람의 이동과 함께 전파하는 방법뿐이었다.

재즈의 발상지 뉴올리언스와 블루스의 본고장 미시시피 유역이 수로교통의 오랜 요지였다는 점은 그 명백한 증거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새로운 음악 형식들은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상호교류 속에서 발견되고 발전된 것이었다. 그래서, 컨트리 음악사상 최초의 스타인 지미 로저스(사진)가 기관차 제동수 출신이라는 사실에는 필연성마저 내포된 것처럼 보인다. 로저스에게 기관차는, 마크 트웨인에게 증기선이 그러했듯, 창작의 세계와 소통하는 전위였다.

지미 로저스(1897~1933)는 흔히 '컨트리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각지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하여 독자적 스타일로 뿌리를 내린 그는 무엇보다, '백인의 블루스'로서 컨트리 음악의 전범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존재다. 낡은 구전가요나 스탠더드 넘버를 반복해 녹음하던 당시 가수들의 관행과 달리, 로저스는 자작곡을 통해 개인적 경험과 독자적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의 연주 패턴과 노랫말과 창법이 고스란히 컨트리 음악의 교본으로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근거다. 그래서 1961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은 지미 로저스를 그 첫 번째 헌액자로 선정하며 "모든 것을 시작한 인물"이라는 찬사를 바쳤던 것이다.

1927년 11월, 로저스의 생애 두 번째 녹음 세션에서 탄생한 〈티 포 텍사스〉는 그 '모든 것을 시작한 노래'였다. 50만 장이 팔려나간 이 곡은 로저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요들 테크닉과 흑인의 팔세토 발성을 결합시킨 그 특유의 창법을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다른 제목인 〈블루 요들 넘버 원〉은 로저스의 독특한 창법을 가리키는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총 13편의 '블루 요들' 연작을 발표하여 컨트리 음악의 고전적 스타일을 완성시켰고 전례가 없는 대중적 성공을 누렸다. 시리즈의 아홉 번째 노래 〈스탠딩 온 더 코너〉(1930년)에서는 당대 최고의 재즈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과 역사적인 협연을 펼치기도 했다. 비평가 피터 구랠닉이 "당대의 신화적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영향력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베이브 루스 그리고 뒷날의 엘비스 프레슬리밖에 없다"고 단언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지미 로저스가 '가난의 질병'이라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인 인생의 아이러니다. 기관차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전진시킨 원동인 동시에 비극적 최후를 촉진시킨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홍키통크 맨〉(1982년)은, 느슨하게나마, 그의 죽음을 모티프로 각색한 영화다. 컨트리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던 '뮤지션 이스트우드'는 극중에서 직접 노래도 불렀지만, 현명하게도, 지미 로저스의 요들 창법을 흉내내는 따위의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박은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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