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인간애'와 '반감' 사이 /서수민

2007. 8. 2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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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마저 이들을 미화해 영웅 만들기에 나섰냐?"

지난 8월15일치 1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석방 기회를 다른 여성에게 양보했다는 내용의 '총구 앞에 핀 인간애' 기사가 나간 뒤 인터넷의 한겨레 홈페이지에는 비판적인 댓글이 수천개나 달렸습니다. 기자의 개인 이메일을 통해서도 날마다 수백통의 항의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대부분 차마 글로 옮겨 적기 힘든 심한 욕설투성이였습니다. 위에 든 예는 그나마 매우 점잖은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피랍자가 다른 사람에게 '먼저 풀려나라'고 양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내용을 취재한 사람은 <한겨레>의 의뢰를 받은 파키스탄 유력지 <더뉴스>의 탈레반 전문기자 라히물라 유수프자이입니다. 그는 독실한 무슬림으로, 기독교인들의 무차별적 선교에 매우 비판적입니다. 그가 인터뷰한 압둘라는 인질들을 납치·억류한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 탈레반 사령관입니다. 취재기자나 취재원 모두 인질을 '영웅화'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유수프자이가 송고해 온 '석방 양보' 기사가 진실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아프간에서 취재 활동을 벌인 유일한 한국 언론인이었던 강경란 프리랜서 피디 역시 "인질 가운데 한 명이 석방 기회를 양보해 탈레반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내용을 확인해 줬습니다.

총구 앞에 생명이 오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인간애'를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압둘라 사령관 역시 "그는 매우 용감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만큼 이 기사에 대한 독자나 누리꾼들의 싸늘한 반응은 놀랍고도 가슴 아팠습니다. 게다가 기사를 부인하는 탈레반 대변인의 얘기 등이 나오자, 네티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작 기사'라는 딱지를 붙이며 더욱 심한 돌팔매질을 해댔습니다.

이 기사의 진실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탈레반한테서 풀려난 김경자·김지나씨가 지난 23일 "이지영씨가 석방 기회를 양보했다"며 이씨가 쓴 편지를 공개하면서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사를 비난해온 사람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을 "양치기 소녀"라며 비난했습니다. "보수 기독교세력의 음모"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반응의 바닥에 깔린 정서는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 기독교의 공격적인 해외선교 활동은 많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반감을 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위험하다고 나라가 나서서 막는 걸 죽어도 간다고 하고, 출발 전에 브이 표시하며…" "그들을 살리려고 낼 세금이면 밥 못 먹고 사는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배불릴 수 있다" "나라 지키는 군인들은 다쳐도 가기 힘든 국군병원 특실에 나라 망신 시킨 사람들이 입원해 있다"는 등의 비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19명의 소중한 목숨이 아직도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개독교' 다 죽어라"는 식의 욕설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게 과연 옳은지는 정말 의문입니다. 한 독자가 보낸 "지금은 기독교인 옹호가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기독교를 까야 할 시기"라는 메일에서 저는 아픔에 공감할 능력을 잃은 우리들을 봅니다. 기독교의 선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놓고 친기독교냐 반기독교냐는 식의 편협한 편가르기를 하는 메마른 성정을 접하면서 참담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수민/민족국제 부문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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