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규 "고(故) 김주승, 사형선고 받은 상태에서도 최선 다했다"

2007. 8. 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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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오대규가 고인이 된 동료 김주승(46)의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오대규는 14일 오후 고인의 비보를 접한 뒤 경기도 부천 석왕사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대규는 "항상 겸손하게 방송 생활 열심히 하다가 좋은 작품 여러분께 남겨주고 싶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사형 선고 받은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했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빈소에는 탤런트 김동현 김정현 등 작품 활동을 통해 고 김주승과 친분을 맺은 동료 연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탤런트 하희라는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했으나 조문을 하지 못한 채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편, 큰손 장영자의 전 사위이기도 한 고(故) 김주승은 신장암이 췌장암으로 재발돼 경기도 부천 순천향대병원에서 투명중 13일 타계했다. 향년 46세.

고 김주승은 지난 1997년부터 신장암으로 투병해 오다 2002년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올해 초 재발, 췌장암으로 전이돼 그동안 힘겨운 암투병 생활을 해왔다.

고인의 빈소는 경기도 부천 석왕사에 마련됐으나 어머니 등 유족이 세상에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는 걸 원치않아 조문객도 받지않았다. 발인은 15일 삼일장으로 치러졌다.

고 김주승은 1983년 문화방송 MBC 공채 16기 탤런트로 데뷔한 뒤 1985년 드라마 '첫사랑'으로 당시 최고 미녀스타 황신혜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톱스타로 떠올랐으며 '야망의 세월'(1989), '달빛가족'(1989)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 8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로 한 세대를 풍미했었다. 그는 암투병을 거쳐 건강을 회복했던 2003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 드라마 외주제작사 디지털돔을 설립하고 '그녀가 돌아왔다' '나도야 간다' 등 드라마를 제작하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사진 = 고(故) 김주승(왼쪽), 탤런트 오대규(오른쪽)]

[뉴스엔 엔터테인먼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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