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찡한 추리소설이 왔다!

2007. 7. 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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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 <붉은 손가락>겉표지
ⓒ2007 현대문학

'집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다. 남편은 착실하게 돈을 벌고, 아내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간다. 아들도 컴퓨터를 좋아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 신작 <붉은 손가락>의 그 집안은 겉으로 본다면, 평범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내로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아주 다급한 목소리였다. 남편은 의아한 마음으로 귀가했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집 잔디밭에서 어린 소녀가 죽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 아이를 본다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남편은 아내를 쳐다본다. 아내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더니 결국엔 아들이 죽였다고 실토한다.

아들은 왜 소녀를 죽인 것일까? 남편이 닦달해도 대답이 없다. 오히려 짜증만 내며 부모가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평범한 집안에 들이닥친 사건 하나가 그 집안을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가정은 없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안에 무심한 남편, 시어머니를 혐오하는 아내, 왕따를 당하다가 심각할 정도로 버릇이 없어진 아들, 치매에 걸려 미움을 받는 어머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그들의 집안은 실상 누구도 살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이 반성하며 눈물이라도 흘렸다면 자식을 가여워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되레 "나는 미성년자야! 미성년자가 한 일은 부모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몰라!"라고 소리친다. 아찔해진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하기로 한다. 그게 아들과 집안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게 되고, 결국 이들은 시체를 은폐하기로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들이 치밀하게 그것을 해내지는 못할 터, 결국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온다. 이때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들을 자수시킬까? 아니면 자신이 대신해서 죽였다고 거짓말을 할까? 그도 아니라면, 다른 가족을 희생시킬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지 않게, '추리'에 관한 요소들은 쉽게 밝혀진다. 사건이 일어난 것도 충동적이고,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평범해보이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하면, 그것은 확실히 허전해 보인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누구인가? 다들 '추리'로 인기를 얻을 때, 인간의 마음을 훔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유명해진 추리소설가다.

<용의자 X의 헌신>만 하더라도 추리적인 요소가 화끈한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사랑'의 이야기를 접목시켜 화제를 모았었다. <붉은 손가락>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이상이다. <붉은 손가락>은 가족들의 관계를 접목시켰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가미해 불안감을 조성하더니 마지막에는 뜨거운 모성애로 마음을 흔든다. 더욱이 그것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라 어느 소설 못지않게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추리소설에 슬프다는 수식어를 쓸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붉은 손가락>을 보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붉은 손가락>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레몬>, <호숫가 살인사건>, <백야행> 등으로 추리소설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른바 '전국구' 작가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런데 <붉은 손가락>은 <용의자 X의 헌신>의 감정보다 더 깊고 다채롭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얻은 명성을 한 단계 더 높여줄 작품으로 기대할 만하다.

/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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