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해깝은 신발신고 놀러다니시소

2007. 4. 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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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승숙 기자]

▲ 봄옷을 한 벌 장만해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새 옷이 무척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2007 이승숙

장인어른 챙기는 고마운 내 남편

봄날이라 해도 바닷바람이 부는 곳이라 그런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강화는 내내 날이 새초롬하니 추웠다. 마당에 나갈 때면 잠바라도 하나 더 걸치고 나가야 될 정도로 지난 며칠간 날이 쌀쌀했다. 그런데 오늘(14일)은 날이 참말로 좋다. 집에만 있기에는 왠지 모르게 손해 보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랑 같이 아버지 모시고 목욕탕엘 갔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엘 다녀오곤 했지만 불한증막에 갈 수가 없어서 늘 아쉬웠다. 목욕탕 안 2층에는 불한증막이 있는데 여자는 여탕에서 올라가고 남자는 남탕을 통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아버지를 그 곳으로 모시고 갈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도 같이 목욕하러 가기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고 불한증막에도 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불한증막이 처음이신 듯 "참 희한하네. 저 밑에 방은 뜨거버서 꼭 꼬치굴(고추 말리는 막) 같더마는 여게는 뜨뜻한 기 시원하고 좋네" 하셨다. 목욕탕 안에 있는 사우나는 뜨겁기도 하지만 들어갔다 나오면 힘이 다 빠진다고 했다. 하지만 불한증막은 땀은 나오는데 힘은 들지 않는다며 마치 소풍 온 아이처럼 신기해 하는 거였다.

아버지가 끼고 있는 안경을 유심히 보던 남편이 장인어른 안경 하나 맞춰 드려야겠다고 했다. 안경알을 거친 수건으로 닦아서 그런지 흠이 많이 나 있다고 하였다.

"노인 분들 안경은 무조건 가벼워야 하는데 장인어른 안경은 무거워 보인다. 귀 뒤에 안경 다리 자국이 다 생겼잖아. 안경 하나 맞춰 드리자."

안경을 안 끼는 나는 아버지 안경이 어떤지 감을 못 잡았는데 안경잽이인 남편은 딱 보고 아버지 안경이 어떤지 다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목욕을 다 하고 나와서 아버지 안경 맞추러 김포로 나갔다.

"아부지요, 아부지 안경 하나 맞차드릴라꼬 김포 나가는 길입니더."

"안경 맞춘다꼬? 뭐 하로 맞출라 카노 하나 있으마 됐제. 개안타 고마 집에 가자."

"아입니더. 아부지 안경이 무거버 보인다꼬 김 서방이 안경 하나 맞춰드린다 카네요. 안경 맞추고 들어오면서 맛있는 거도 묵고 그라입시더."

▲ 여름용 그물코 구두입니다. 아부지는 해깝아서(가벼워서) 아주 좋다고 하시네요.
ⓒ2007 이승숙

딸 돈 아끼려고 늘 괜찮다고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뭐라도 하나 사드리려고 하면 '있는데 뭐 하려고 또 사냐' 그러시며 '됐다 개안타(괜찮다)'고 늘 그러셨다. 딸이 당신 때문에 돈 쓸까봐 늘 됐다됐다 그러셨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진심은 아니었다. 속으로는 좋으시면서도 딸 돈을 아껴주려고 늘 '됐다' 그러셨던 것이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춰 드렸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보이는 것으로 맞췄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데 남편이 또 그러는 거였다.

"어디 신발 가게 있는지 찾아 봐. 장인어른 편한 신발 하나 사 드리자."

그래서 신발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아버지 발에 맞춤한 신발을 하나 골라 드렸더니 아버지가 또 그러시는 거였다.

"백지로 뭐 할라꼬 자꾸 살라 카노? 개안타 집에 가마 구두도 있고 다 있다."

"아부지요, 이거 비싼 거 아입니더. 걱정하지 말고 신어시소. 맻 미리 하마 됩니꺼? 270 하마 됩니꺼?"

"270은 좀 작다. 275는 돼야 낭낭하고(넉넉하고) 편하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물코 여름 구두를 하나 샀다. 지금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내 신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도 마음에 드시는지 신어 보시고는 벗지 않으셨다.

"아부지요 가볍고 좋지요? 안 신은 거 같지요?"

"그케, 구두가 해깝고(가볍고) 좋으네. 이거 얼매 줏노? 비싼 거 아이가?"

"아부지 비싼 거 아입니더. 2만원도 안 하는 겁니더."

돈이 싸다는 말에 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시나 보다. 그제서야 드러내놓고 좋아하시는 거였다.

"이거 올해만 신어도 본전 뽑고도 남겠다. 하따, 참 해깝고(가볍고) 좋네."

▲ 아버지와 함께 벚꽃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이 순간이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2007 이승숙

아버지, 구두 신고 많이 놀러 다니시소

아버지를 위해서 뭘 사려고 하면 아버지는 늘 사양하셨다. 며칠 전엔 인삼센터까지 가서도 인삼을 안 사고 그냥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혈압 있는 사람은 인삼을 먹으면 혈압이 더 높아져서 안 좋다 하시며 인삼을 사지 마라 그러셨다. 하지만 인삼 가게 주인이 먹어보라며 깎아서 준 인삼뿌리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씹고 계신 아버지였다.

옷을 하나 사려고 해도 괜찮다 하셨고 뭐든 사려고만 하면 다 괜찮다 하셨다. 나는 그게 진짜로 괜찮아서 그러시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딸이 돈 쓸까봐, 딸 돈 아껴 주려고 늘 괜찮다 괜찮다 하신 거였다.

우리들 키우실 때도 땀 흘려 농사지어서 힘껏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주신 부모님이셨다. 좋은 것은 자식들 몫으로 돌려놓고 거친 것만 먹고 입으셨다. 그 때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괜찮다는 그 말씀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란 걸 이제는 안다.

아버지, 해깝은(가벼운) 안경이랑 구두 신고 개갑은데(가까운데) 놀러 다니고 그러세요. 다리 힘이 없어서 작은 것에 걸려도 휘청거리시는 아버지 보면 제 마음이 다 아프답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그냥 제가 챙겨 드리는 거 기쁜 마음으로 받아만 주세요. 자꾸 괜찮다 그러시지 말고 그냥 받아만 주세요. 구멍 난 난닝구(속내의) 기워 입으시며 공부 가르쳐 준 그 은공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도록 오래 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 아버지….

▲ 벚꽃이 활짝 핀 강화 강남고등학교입니다. 아버지 얼굴에도 꽃이 핀 거 같습니다.
ⓒ2007 이승숙

/이승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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