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 일삼는 독재로 돌아가려는가

2007. 3. 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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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일 나라 곳곳에서 1980년대 흔하던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위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려는 이들을 경찰이 막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거나, 서울 한복판에서 숨바꼭질식 시위가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대규모 집회를 경찰이 금지하기로 한 탓이다. 한-미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기에 범국본도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제 범국본 집회를 금지하거나 원천봉쇄하지 말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11월22일 집회 때처럼 무리하게 상경 시위대를 단속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인권위의 요청에 대한 경찰의 반응은 "범국본이 인권위에 준법 평화집회를 약속했다고 하지만, 인권위의 말만 믿고 실험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지경에서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내세워 경찰을 비판하는 건 구차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 나라가 경찰국가가 아닌 바에야 신성한 기본권의 보장은 경찰의 허가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의 의무다. 그래서 자유무역협정 반대집회 봉쇄의 책임은 결국 정부에 물어야 한다. 설마 경찰이 정부의 의지를 거스르면서 집회를 막고 있다고 하겠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가 정당한지, 이런 목소리에 호응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따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범국본이 폭력 시위를 벌일지, 평화 시위를 벌일지 예상하는 것도 나중 일이다. 과거 독재정권들은 집회를 막을 때마다, 과격한 주장으로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느니, 폭력 시위가 예상된다느니 하는 따위의 핑계를 댔다. 하지만 이런 핑계로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 하더라도 일차적인 책임은 저항에 있는 게 아니라 정부에 있다.

요즘 시중에는 탄핵반대 대규모 집회로 힘을 얻은 노무현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는 철저히 막는 이중성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유무역협정에 매진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편의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이는 행위다. 정부는 범국본의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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