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석궁테러' 영장과 달리 상해혐의 기소

입력 2007. 2. 9. 05:28 수정 2007. 2. 9.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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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인미수 짜맞추기' 논란

석궁 결함 사실 은폐… 칼도 김씨가 안 꺼내

경찰이 박홍우(55)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석궁(石弓)을 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를 조사하면서 무리하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부장 조주태)는 8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김 전 교수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ㆍ흉기 등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 수사부터 엉망

경찰은 수사 시작부터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달 15일 사건 발생 당시 박 부장판사의 아파트 계단 바닥에는 칼(35㎝)과 노끈, 화살 등이 배열돼 있었고, 경찰은 "김씨가 가방에서 이들 물건을 꺼내 놓은 것"이라며 살인미수 혐의의 주된 근거로 거론했다. 김씨는 일관되게 "칼 등을 꺼낸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뒤에야 가방에서 칼 등을 꺼낸 사람은 김씨가 아니라 모 방송사 기자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밝혀졌다. 검찰과 당시 수사에 참가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처음 출동했던 지구대 경찰들은 석궁만 증거품으로 확보하고 가방은 발견조차 못했다. 뒤이어 현장을 찾은 한 방송사 기자가 가방을 발견하고 칼 등을 꺼내 계단에 늘어 놓은 뒤 촬영했다. 뒤늦게 출동한 서울 송파경찰서 형사들은 경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박 부장판사를 살해하기 위한 김씨의 치밀한 준비로 단정했다.

● 김씨에 유리한 증거 은폐 의혹도

김씨의 석궁이 일명 '메뚜기'로 불리는 격발장치가 마모돼 시위와 방아쇠를 순차적으로 당기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우연히 발사될 수 있는 불량제품이라는 사실도 검찰 송치 뒤에 밝혀졌다. 경찰의 의뢰로 석궁을 조사한 전문가는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었다면 우연히 화살이 발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알렸다.

경찰은 "몸싸움 끝에 우발적으로 발사됐다"는 김씨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를 확보했지만, 검찰에 이를 알리지는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에 사건을 넘긴 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뿐 고의로 감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17일 석궁의 결함 여부는 확인하지도 않고 "김씨가 안전장치를 풀고 조준사격 했다"고 발표했다.

● 살인미수 짜맞추기 수사였나

수사를 지휘했던 이희성 당시 송파서 형사과장(현 구례서장)은 "박 부장판사가 여러 차례 '범인이 아파트 계단에서 기다리다 자신을 보자마자 석궁을 겨눈 뒤 쏘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이를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당시 석궁이 불량제품이라는 점과 김씨가 칼과 노끈을 가방에서 꺼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은 "수사팀 내부에서도 너무 빨리 살인미수 혐의로 단정짓고 그 방향으로 수사를 몰아가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주태 동부지검 부장검사는 "경찰은 김씨가 박 부장판사를 조준해 석궁을 쐈다고 했지만, 박 부장판사조차 어떻게 석궁을 맞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며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석궁 발사 실험과 석궁 전문가 등 참고인들 대상의 추가 조사결과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명호교수복직대책위원회의 이성대 안산공대 교수는 "박 부장판사의 상처 크기로 볼 때 살인 의도가 없는 우발적 사고임을 쉽게 알 수 있었는데도 경찰이 무리하게 짜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며 "살인미수 혐의를 벗은 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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