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명품 벼루 강탈한 유득공

2007. 2. 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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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교수 '선비답게 산다는 것'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8세기 조선지식인 사회에는 벼루 수집 열풍이 일었다. 이 분야에 가장 애착을 보인 이 중 한 명이 유득공(柳得恭. 1749-1807).

한데 이런 그에게 어느 날 탐나는 벼루가 눈에 들어왔다.

절친한 이로 이정구(李鼎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ㆍ정조 시대 저명한 실학자 중 한 명인 이서구(李書九. 1754-1825)의 사촌 동생. 이정구는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길에 시모노세키에서 비싼 값을 쳐 주고 적간관연(赤間關硯)이라는 벼루를 사왔다. 이 벼루는 당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명품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저 벼루를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유득공은 이정구에게 애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좀체 내어 놓을 생각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삼십육계 줄행랑이었다. 얼른 벼루를 낚아채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는 달아났다.

그렇지만 못내 미안했던지 유득공은 이런 시를 이정구에게 써 주었다.

"벼루를 본 나 몹시도 갖고 싶었네 / 친구는 몹시 곤란하다는 낯빛을 보였네 / 미불(米불<초두 밑에 市>)은 옷소매에 벼루 숨겨 훔친 일 있고 / 소동파는 벼루에 침을 뱉어 가진 일 있네 / 옛사람도 그러했거늘 나야 말해 무엇하랴 / 낚아채 달아나니 걸음도 우쭐우쭐 / 이 벼루 색깔 붉어 그리도 얻기 어려운겐가? / 적간관이란 그 이름 이상타 할 게 없네."

송나라 때의 저명한 시인들인 미불과 소동파조차 탐나는 벼루는 훔쳐 얻었다 했거늘 나라고 그렇게 못할 까닭이 없다는 저 능청에 이정구라고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유득공의 벼루를 향한 욕심은 그가 사용한 실물 벼루에서 다시금 확인된다. 조선왕조 내시 출신이라는 고 이병직 소장품 중에 유득공의 벼루 1점(20.5x12.7x1.5㎝)은 지금은 그 행방이 묘연하나, 70년대 문화재관리국 조사에서 흔적이 포착된 적이 있다.

두만강 돌로 제작한 이 운지연(雲池硯) 뒷면에는 유득공이 쓴 이런 구절이 새겨져있다.

"이 두만강 돌은 쇳소리가 나고 미끄럽기는 하나 먹을 거부하지 않네. (소)동파의 풍미연(風味硯)과 동일한 제품이 아닐까? 특이하구나. 고운(古芸)."

고운은 유득공의 호.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46)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옛글을 읽다가 발견한 선비 특유의 모습과 흥미로운 사유의 자취를 모아 엮어" 최근에 나온 '선비답게 산다는 것'(푸른역사)에서 소개한 유득공의 모습이다.

유득공은 스승격인 연암 박지원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뺀질이'에 가까운 면모를 농후하게 보이는데, 안 교수는 "'뺀질이' 보다는 '해학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희락당(希樂堂) 김안로(金安老. 1481-1537). TV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권력에만 눈이 먼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 그는 대단한 서정시인이었다.

"봄바람이 복사꽃 봉우리 터뜨리는 계절 / 그네 뛰는 철이라고 비는 내려 먼지를 씻네 / 비단 신은 꽃을 스쳐 붉은 이슬에 젖어들고 / 고운 다리 버들을 헤쳐 푸른 안개 갈라놓네."

이는 그에게 장원급제를 안겨준 '그네'라는 시의 전반부다. 욕 먹을 만큼 먹은 김안로를 이제는 지옥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안 교수는 역설한다.

이 외에도 안 교수의 이번 책을 통해 '나에게 부치는 편지'를 쓴 이규보, 13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흠영'이라는 일기를 쓴 유만주(兪晩柱. 1755-1788), 유득공처럼 이상한 수집벽이 있던 김광수와 장서가 이하곤, 고증학자 성해응, 천민시인 홍세태 등등 조선 선비 문화의 다양한 층위를 맛볼 수 있다.

주제의 신선함에 탄탄한 증거 제시. 하지만 이런 내용물을 포장술(편집)이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본문 이해에 필수적인 도판 대부분은 원색을 유지했야 했음에도 흑백으로 처리했으나 그조차 선명도가 떨어져 아쉬움을 남긴다. 302쪽. 1만2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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