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일류(日流)가 지배하다?

2006. 12. 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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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2006년 일본에서 '한류(韓流) 위기론'이 일어나는 가운데, 한국 대중 문화계에서 '일류(日流)'가 불었다. 이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일류는 문학계에서부터 불어 닥쳤다. 정이현, 공지영의 소설이 인기를 끌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소설은 위기다. 그러나 일본 소설은 인기다. 정신과 병동에서 일어난 요절 복통의 에피소드를 재밌게 그린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소설 부문에서 14주 간 1위를 차지했고,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도 10주 간 1위에 올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일본 문학도서발행은 이달 말까지 500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2004년 364종이었고, 10년전과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일본 소설의 출판 러시로 선인세(advance)가 1~2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올랐다. 이전에는 권당 2백만~3백만 원이었다. 선인세는 나중에 전체 인세에서 해당 액수를 빼지만, 판매가 저조하면 출판사 부담이다. 최고의 일본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수상작은 5천 만원까지 오르는 실정이다. 출판사의 경쟁으로 그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지적도 있다. 얼마 전까지 대만이 일본 소설의 주요 소비지였으나, 요즘은 한국시장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무라카미 소설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 소설인데 이렇게 다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04년 무렵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가 60만부나 팔리면서 부터다. 2005년에는 가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3백 20만부나 팔렸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최고 판매기록을 깼다. 에쿠니 가오리는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다. 국내에 출간된 책도 가장 많다. <도쿄타워>를 포함해 8종의 책이 발행되었다. 이 외에 쓰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 야마모토 후미오의 <러브 홀릭>과 <플라나리아>등도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럼 인기를 끄는 일본 소설에는 어떤 점이 다른가? 주로 요즘 20대가 읽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들에게 호응을 받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1)한국에서 기존 소설의 위기는 인터넷 소설의 인기와 역사 환타지 물의 범람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인터넷소설 보다는 진지하고, 역사나 판타지 물보다는 감수성이 필요한 이들에게 호응을 받는 작품들이다. 2)진지한 사회적 주제가 아니라 쿨한 개인주의의 가벼운 1인칭의 주인공 이야기다. 이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솔직, 엉뚱, 대담하다. 어렵게 은유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탁 털어놓는 문체이며 너무 솔직해서 엉뚱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던 걸 대신 해준다. 5)평범하지만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7)같은 현상을 표현해도 감각적이고 산뜻하다. 6)최근에는 한국의 감성코드에도 맞는 발랄하고 세련된 작품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일본 작품들이 호응을 받는 것은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종의 '연계효과'다. 한국에서 1년 동안 제작되는 영화 80여 편의 작품 가운데 20여 편이 일본 원작 바탕이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편에 불과했는데, 일본 원작 바탕의 영화가 2006년에만 13편이다. 한국에서 영화 기획 시 웬만한 일본 소설은 모두 검토하는 것이 절차화되었다.

이준기 주연의 <플라이대디>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바탕으로 했고, 손예진, 감우성의 드라마 <연애시대>가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개봉 예정인 이미연·이태란 주연의 <어깨너머의 연인> 이나 <반짝반짝빛나는>도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반짝반짝빛나는>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다. <프리즌 호텔>은 영화 <파이란>의 원작을 쓴 아사다 지로의 작품이다.

일본 소설에 대한 국내 제작사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진다. <플라이 대디> 판권은 2억 5천만원에 달했다. 2003년 싱글즈의 원작 <29세의 크리스마스> 판권료는 1천만원이었다. <내머릿속의 지우개>가 5천만 원, 스치야 가론의 <올드보이>가 2천 만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가와구치 가이지의 만화 <생존>은 17개 국내 영화사가 경쟁을 벌였다.

2006년 소설뿐만 아니라 일본 드라마, 만화,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경향도 여전히 많았다. 영화계가 주로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면 방송계는 일본 드라마 원작의 리메이크 한다. 물론 드라마를 영화제로 제작한 경우도 있었고, 만화를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한다. 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를 비롯해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 <하얀 거탑>,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 <오렌지 데이즈>등은 일본에서 이른 '국민 드라마'였다.

문근영 김주혁 주연의 영화 <사랑따윈 필요 없어>도 일본 인기 드라마였다. <바르게 살자>와 <당신의 가방모찌>,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가마타 행진곡>은 영화로써 각각 리메이크 하고 있다. 김아중 주연의 <미녀는 괴로워>는 스즈키 유미코의 만화가 원작이며 공유, 성유리 주연의 <어느 멋진 날>도 일본 만화가 모티브다.

일본 드라마도 화제를 모은 2006년이었다. 일본 문화 전문 케이블 '채널J'에서 방영한 사와지리 에리카 주연의 <1리터의 눈물>과 <오오쿠 쇼군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1리터의 눈물>은 시청자 소감이 폭주해 홈페이지가 다운 되었다. 일본 시대극 <오오쿠 쇼군의 여인들>은 쇼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본판 '여인천하'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사실 P2P사이트에서는 일본 드라마 마니아들이 엄청나게 많이 형성되어 있다.

한일 박스오피스에서 일류가 한류 앞섰다. 극장가에서만큼 일류(日流)가 한류(韓流)보다 거셌다. FILM2.0 온라인이 2006년 1월부터 11월 셋째 주까지, 한국과 일본의 박스오피를 분석한 결과,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는 13편이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오른 반면,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는 6편만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들었다. 지난 8월 말 개봉해 1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일본침몰>은 9월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최근 개봉한 <데스노트>도 11월 흥행 성적에서 1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어 2위 <데스 노트(77만5000명)>를 차지했다.

여전히 애니메이션과 호러도 은근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원피스>, <게드전기>, <포켓몬레인저와 바다의 왕자 마나피>, <개구리 중사 케로로>, <폭풍우치는 밤에> 등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막강 브랜드 파워인 일본 호러 영화들도 여전했다. 여름에 <환생>, <착신아리 파이널>, <유실물>과 같은 호러 영화는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냈다. <나나>,<스윙걸즈>,<메종드 히미코> 등의 청춘 트렌드 영화들도 적은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오다기리 죠 주연의 <메종 드 히미코>의 경우 4개관에서만 상영했지만, 9만 명이상을 동원했다.

일본 인디 영화도 그 인기가 은근히 뜨거웠다. '제3회 일본영화제'는 90% 이상의 평균 좌석 점유율이었다. 7월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은 2주 예정이었지만, 지난 달까지 연장을 반복했다. 이러한 관심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등 독특한 영화들 때문에 시작되었다. 오다기리 죠의 <유레루>는 개봉 5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 3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몰이를 했다. 인디 영화에서 1만은 상업영화의 1000만이다.

이렇게 보면 한류는 지고, 거꾸로 일류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일류 현상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팽창해 소재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일본 원작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소설이라고 해도 국내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소설의 경우에도 국내 작가들의 빈자리를 일본 소설이 일시적으로 채우면서 소비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본다. 많은 출판사들에서 지적하듯이 일본 소설을 국내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위험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상화 되는 작품들과의 연계효과 차원에서 일본 원작이 많이 팔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작품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향후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일본에서 한류의 경우 젊은 층들은 한국작품들에 관심이 없다. 이는 한류에 대한 한류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줄어들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일본은 잠재적 시장을 지속적으로 넓히고 있고 한류는 기존의 시장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흥행성적을 보면 일본 작품에 무조건 영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듯싶다. 일본 작품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토착화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드라마 <백 한 번째 프러포즈>는 물론,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문근영, 김주혁이라는 스타파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 고전했다. 극 전개가 치밀하지 못하고 한국 정서에 맞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특색에 맞게, 재창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플라이 대디>도 이준기를 내세웠지만 참패했다. 국내 정서 고려 없는 무조건적인 리메이크는 외면 받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금 한국의 작품들은 너무 해외 눈치를 보고 있다. 한류의 상업적 성공이 드리운 그늘이다. 특히 일본인들의 눈치를 보며 제작한다. 일본 시장을 염두하고 제작을 하다 보니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기보다는 아류적인 작품들이 나온다. 해외 팬들만을 고려할 경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 상업적 예술적으로 성공한 <올드보이>는 기본 줄거리와 모티브를 빼면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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