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막걸리에서 새로운 '향기'가 난다

2006. 12. 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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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술로 거듭나 전문 체인점 성업 중… 퓨전막걸이 청년층·여성층에 어필

막걸리집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인테리어가 제대로 된 막걸리 전문점이 성업중이다. 그동안 일부 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던 막걸리가 갑자기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0~1980년대에는 소주를 쐬주라고 불렀고 맥주를 삐루라 했으며 막걸리를 대포라 부르면서 진짜 좋은 민간주를 밀주라 불렀다. 그 가운데 막걸리는 정말 서민의 술이다. 언제부턴가 소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옛날, 지금 40대 이상의 남녀들에게 막걸리는 가장 만만한 술이었다. 종로 2가 YMCA 뒷골목에 들어가면 우미관이 있고 그곳에서 피맛골 인사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면수와 막걸리집이 줄줄이 있었다. 곰발바닥만한 이면수 구이 한 마리에 1000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1000원이었다. 막걸리 한 주전자면 네 사람의 배를 채울 정도의 양이다.

인사동 어귀에 있던 전봇대집은 술집 안에 전봇대가 그대로 있었으며 특히 막걸리 맛이 좋아서 단골이 많던 집이다. 그때는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일도 서로 양해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노래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대를 논하는 거친 숨소리에 분기탱천하던 일행도 11시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12시 야통에 걸리면 다음 날을 완전 망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 밤 11시 즈음의 지하철 안에는 승객의 절반 이상이 취객들이다. 그러다가 누구 하나가 끄르륵 하고 트림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객차 안은 막걸리 냄새에 이면수 껍데기, 빈대떡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다른 칸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아침은 정말로 최악이다. 평소 없던 편두통이 오질 않나, 온 머리가 욱신욱신 지끈지끈 쪼개질 듯했다. 머리가 그토록 아팠던 이유는 하나, 막걸리가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균이 많아 효모 발생을 훼방하니 술이 소화되지 않아서 그랬다. 그래서 정제가 잘 된 술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정제가 제대로 된 술은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밀주라 불리며 암암리에 팔리곤 했다. 종로3가 밀주집과 숙대앞 밀주집은 당시 젊은 애주가에게 매우 인기있는 프리미엄급 막걸리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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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막걸리전문점을 찾아가다

최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막걸리 전문점의 첫 번째 특징은 모두 생막걸리를 판다는 점이다. 생막걸리는 우선 좋은 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탁주와 분명한 차이가 있는 웰빙술이다. 예전에는 쌀의 수요가 많아서 남는 쌀이 없었지만 지금은 남아넘치는 게 쌀이다. 그래서 좋은 쌀을 싼값에 공급받아 만들 수 있으니 일단 재료가 좋아진 것이다. 거기에 제조 공정이 위생화·규격화되고 발효기술도 표준화되어 이제 머리가 아프기는커녕 소화가 잘 되고 장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술로 거듭났으며 그 결과 전국에 막걸리 프랜차이즈가 여러 군데 생기게 된 것이다.

웰빙 막걸리의 핵심은 효모다. 효모는 막걸리의 원료이기도 하지만 인체에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ㄴ 나오는 막걸리는 건강한 효모가 살아 있어서 우리 몸에 좋은 약주 구실을 한다. 막걸리에 살아 있는 효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아미노산, 비타민, 무기질 등이 포함돼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를 돕는다. 그러나 30대 이상의 남자들이 막걸리집을 찾는 결정적 이유는 그곳에서 그 옛날 마음이라도 뿌듯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상실했던 자신의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함이다.

구일산 보건소 근처의 한 막걸리 전문점에 가면 막걸리 주전자로 만든 입구 조명에 1970년대 인기 가요가 흘러나온다. 손님은 30대 중반부터 50줄의 나이 쯤으로 보이는 남녀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메뉴는 생막걸리와 각종 안주. 생막걸리는 김치냉장고 처럼 생긴 냉장 기계에서 바가지로 퍼서 깔때기로 연결된 주전자에 담아주었는데, 한 주전자에 5000원이니 부담이 없다.

안주는 막걸리와 어울리는 모든 먹을거리가 준비돼 있다. 인기 있는 메뉴는 과메기와 지짐이라는 게 여주인의 말이다. 안주는 7000원에서 1만 원 선이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으며 양이 많아서 네 사람이 4만 원 정도면 적당한 취기를 느낄 정도의 막걸리를 즐길 수 있다. 1970년대에 4000원이면 술이 떡이 되어 비틀거렸던 시절에 비해 꼭 10배의 계산이 나온다.

인테리어는 역시 7080세대를 겨냥한 빈티지 스타일에 우리나라 고유의 소품을 이용했다. 한자가 가득한 벽지가 그렇고 노란색 양은 주전자가 그렇고 예전의 학사주점을 연상케 하는 마룻바닥도 그 느낌을 물씬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시집와서 매일 시부모님께 밥을 담아 드렸다는 놋그릇 세트도 장식장 한 켠을 채우고 있다.

손님들의 대화 내용을 일일이 들을 수는 없었으나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옛날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옛날에 일산이 논밭 투성이였다느니, 17 대 1로 싸워 이겼다느니, 박통이 죽었을 때 군대에서 바짝 긴장했다느니, 야통에 걸려 파출소에 끌려갔다가 나중에 뒷돈을 주기로 하고 일단 풀려난 뒤에 군대로 도망갔다느니…. 그들의 구라는 밤 새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막걸리집의 막걸리 수준과 제조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단 업체마다 퓨전의 이름으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있으나 사실 술꾼에게 퓨전막걸리는 별다른 어필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퓨전막걸리는 젊은 층이나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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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프랜차이즈

막걸리 맛에 뚜렷한 차이가 없는 한, 막걸리집을 선택하는 기준은 특별한 막걸리가 있느냐, 퓨전막걸리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안주는 어떤 것이 있는가, 직장 또는 내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가 등을 따져보면 된다. 주요 막걸리 프랜차이즈는 다음과 같다.

2070 생막걸리

생막걸리와 퓨전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주점이니만큼 막걸리 외에도 소주, 맥주, 생맥주, 청하, 백세주, 천년약속 등 전통주도 마실 수 있다. 2070생막걸리의 퓨전막걸리는 딸기생막걸리, 키위생막걸리, 파인애플생막걸리, 구기자맑은생막걸리 등이 있다. 퓨전 막걸리는 생막걸리에 생과일을 섞어주는데, 예전에 오이소주, 레몬소주 등을 생각하면 된다. 생과일을 섞는 만큼, 막걸리에서 과일 향기가 많이 나며 마실 때 느낌도 막걸리보다 걸죽한 게 요구르트 느낌도 난다. 효모에 과일까지 섞었으니 당연한 맛이기도 하다.

안주는 매운고추부추찌지미, 두부전, 생굴전, 동태전 등 지짐 종류, 촌두부김치, 오돌뼈, 골뱅이야채과일무침 등과 홍합탕, 알탕 등 탕류, 과메기, 달팽이무침, 홍어무침, 홍어삼합 등 특별한 안주도 있다. 가격은 5000원에서 3만 원까지 다양하다.

문의 | 02-352-2070 / www.2070tak.com

탁배기 한사발

생막걸리와 옐로, 핑크, 블루 등 웰빙컬러막걸리, 그리고 동동주를 맛볼 수 있다, 전통주로는 대나무통술과 복분자 등이 있으며 애플소주, 레몬라임소주, 망고소주, 오렌지소주, 자몽소주 등 칵테일 소주도 특징. 김치불고기전, 퓨전감자빈대떡, 도토리묵, 아싸가오리회무침, 김치두루치기, 오행순살족발, 해물계란탕, 오뎅누룽지탕, 홍합탕, 아이스황도 등이 대표 안주.

문의 | 1644-3328 / www.icetacju.co.kr

탁사발 퓨전대포집

생막걸리와 검은콩막걸리, 과일소주, 요구르트소주, 그리고 코로나, 밀러 등 수입 맥주도 파는 곳이다. 매운닭발볶음, 묵은지제육볶음, 불닭, 해물떡볶이, 석굴순두부탕, 돼지고기 김치찌개, 과메기, 보쌈, 가오리무침, 꽁치통구이, 왕새우꼬치, 이면수튀김 등이 대표안주. 매장은 전국에 100여 곳의 점포가 있다.

문의 | 080-200-2007 / www.taksabal.co.kr

한계령주막꺼리 눈막걸리

눈막걸리란 스노월드라는 제설기에서 만든 눈을 막걸리 위에 뿌려 내오는 것을 말한다. 깨끗한 눈이 막걸리의 맛을 계속 유지시켜주며 시각적으로도 즐거운 기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아이템이다. 메뉴로는 감자전, 메밀전 등 전류와 도토리묵, 치즈계란말이, 대관령황태구이, 더덕무침, 모래집구이, 조기소금구이, 주꾸미볶음, 조개탕, 김치소시지 등의 안주가 있다. 매장은 영등포, 오목교, 봉천, 대림, 김포, 신월 등에 있다.

문의 | 1644-7470 / www.jumakggury.com

참진청송얼음골막걸리

생막걸리와 전통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미더덕홍합한사발, 오코노미야키, 매운갈비찜, 떡갈비스테이크, 콩비지, 촌돼지볶음, 감자탕 등의 안주들을 1만 원 미만에 제공한다. 매장은 부산안락동, 수유점, 안산점 등이 있다.

문의 | 031-766-3553 / www.bulromgl.com

막걸리는 건강식품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예전의 막걸리가 말 그대로 탁한 술이라면 지금의 막걸리는 깨끗한 웰빙술이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으로 빚어 막 걸러낸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라 불리게 됐다. 전통적 제조 방법은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감자 등을 쪄서 건조시킨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청주를 떠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걸러 짜낸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막걸리를 만들어 먹었다. 술과 관련된 두둑한 세금을 잃기 싫은 정부가 일반 가정에서는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단속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사라졌지만 제대로 만든 막걸리는 감칠맛과 깨끗한 맛이 어우러져 있으며 알코올 함유량은 6~7%다.

막걸리에는 필수 아미노산 10여 종이 들어 있으며 단백질 함류량도 2% 가까운 영양제다. 그 밖에 비타민B와 이노시톨, 콜린 등 비타민B 복합체를 모두 갖고 있으며 막걸리의 주요 성분인 유기산은 새콤한 맛을 내고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 모든 술이 그렇듯 과음은 절대 말려야 할 일이지만 막걸리의 적당한 음용은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기분을 좋게 해 정신 건강에 좋고, 적당히 마심으로써 신체 리듬을 원활하게 해주니 권할 만하다는 게 애호가들의 이야기다.

이영근<객원기자 나비콘텐츠플래닝> ichek007@navi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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