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의 영전에 바칠 꽃은 없다

2006. 10. 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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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래헌 기자]

▲ 지난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최규하 전 대통령.
ⓒ2003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긴박하게 전개되는 한반도의 핵 위기 속에서도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고가 만만치 않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론은 그의 남다른 인생역정과 관련하여 '불행한 시대의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수사를 붙여주었지만,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수사일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관운이 트인 사람은 여러 명이 있었지만, 나는 그처럼 운이 좋은 사람을 알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총리와 민선과 관선 서울시장을 두루 역임한 고건씨나 최장수 총리를 역임한 정일권씨, 박정희 정권의 2인자에서 국민의정부 2인자로 변신해 총리를 역임한 김종필씨 등 화려한 관운을 자랑하는 인물이 여러 명 있지만 누구도 최규하씨의 관운을 넘지 못한다.

그렇게 관운 좋은 사람이 비운의 대통령?

그는 유능한 외교 각료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에 오르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하필이면 운이 좋게도 그가 대통령직 승계서열 1위인 총리로 재직할 당시 박 대통령이 살해당함으로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국민투표·쿠데타 등 방법의 옳고그름을 떠나 각고의 노력 끝에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그는 아무런 노력 없이 대통령에 올랐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한 독재자의 신임을 받은 것뿐이었다.

이같은 비난에 대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고 87세의 고령으로 사망한 고인에게 너무 지나친 비난이 아니냐'는 반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이승만 치하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냈고, 5·16군사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회의 의장 박정희'의 외교담당 고문을 역임했으며, 유신독재의 총리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에 대한 동정의 여지는 사라진다.

그는 박정희의 군부 쿠데타를 처음부터 종말까지 함께 한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독재의 공범이다

▲ 지난 2003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최규하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2003 주간사진공동취재단

12·12 쿠데타와 5·18학살과 관련한 그의 침묵은 여러 가지 추측을 가능하게 했지만, 당시 사회가 그에게 물었어야 할 책임의 요지는 "그가 이 두 사건의 공범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또한 "12월 8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날 전두환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의 발언만 놓고 보더라도 '국가의 안위와 헌정질서를 수호할 책임'을 가진 대통령 대행으로서 직무를 유기한 혐의가 드러난다.

청문회 증언거부와 검찰 수사에서의 묵비권 행사 등 그의 침묵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희생자 내지는 피해자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반민족 반민주 정권의 핵심 용의자(容疑者)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한 것이다.

지난 25년간 그의 침묵과 운둔은 그가 비운의 삶을 산 불행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권력의 모든 단맛을 만끽한 노회한 정객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안락한 노후를 즐기기 위한 귀거래사(歸去來辭)였을 뿐이다.

그가 걱정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많은 의문을 자신의 가슴 속에 묻고 간다고 믿겠지만 역사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역사는 늘 약삭빠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그러한 비겁함까지도 이용하며 역사가 발전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인이 된 최규하씨에게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평생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하지만 그가 걱정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알량한 명예'였음을 알만한 사람은 누구나 안다.

이것이 내가 그의 영전에 꽃을 바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래헌 기자

덧붙이는 글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와 <다음>에도 게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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